마이크로소프트

큰숲백과, 나무를 보지 말고 큰 숲을 보라.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1975년 빌 게이츠에 의해 창립된 미국의 IT 기업이다. 현재 1조 달러가 넘는 시가총액을 가진 엄청난 회사로 꾸준히 성장해온 기업이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초대 회장 빌 게이츠 시기[편집 | 원본 편집]

1975년 4월 4일 창업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초기에는 폴 앨런과 빌 게이츠의 합작품인 알테어 베이식 인터프리터 제작으로 돈을 벌었다. 그러다가 IBM PC/AT 호환 기종의 DOS 납품 계약을 맺고 Q-DOS와 그것을 만든 팀 페터슨란 인물을 마이크로소프트로 가져와 MS-DOS로 이름을 바꿔 초대박을 내는데 성공하고[1], 스티브 잡스스티브 워즈니악애플에서 만든 매킨토시와의 경쟁마저 특허분쟁을 일으켜 승리하는 등 공격적인 사업을 펼친 끝에 마침내 범용 PC의 GUI 사용 운영체제의 왕좌에 Windows 95를 안착시키고 넷스케이프 웹 브라우저를 윈도우즈에 동봉된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고사시켰다.

이때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정말 무적의 기업이었는데, 우선 인텔과 손을 잡고 윈도우즈 95와 윈도우즈 98을 탑재한 PC에 밀려난 매킨토시 컴퓨터와 그 제작사 애플은 교육용 + 전문가용 컴퓨터 컨셉을 잡고도 매출이 하향세를 걸었으며 중간에 쫓겨났던 스티브 잡스가 NeXTSTEP을 들고 복귀할 때까지 안습 행보를 걸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밀려 나락으로 떨어진 넷스케이프의 제작사가 인수된 이후에 넷스케이프 개발자들은 오픈소스 진영의 힘을 빌려 완전히 새로 짠 브라우저인 파이어폭스가 나올 때까지 안습 일로를 걸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도 1984년 Microsoft Word의 출시를 시작으로 윈도우즈와 함께 전 세계로 퍼져나가 대한민국[2]을 제외한 전 나라에서 Lotus 1-2-3과 같은 다른 사무용 프로그램을 고사시키고 독점적인 사무용 프로그램 패키지로 자리잡았다. 심지어 세가드림캐스트조차 망하고 닌텐도소니만 남을 정도로 레드오션화 된 거치형 콘솔 시장에 XBox를 투입하여 양호한 성적을 기록할 정도로 콘솔 게임업계에서도 선방했다.

물론 이로 인해 반독점법을 얻어맞고 AT&T마냥 회사가 쪼개질 뻔 하였으나 로비+ 제한적인 소스 공개로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빌 게이츠는 2008년에 은퇴를 하는데...

제 2대 회장 스티브 발머 시기[편집 | 원본 편집]

문제는 그 이후부터 시작됐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제 2대 CEO로 지명된 스티브 발머는 전형적인 관리자형 CEO였고 그 덕에 실제로 윈도우즈와 오피스의 매출 자체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등 회사의 재정 상태는 괜찮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신규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한 것이 문제였는데, 이를 틈타 다른 IT회사들의 반격이 이어졌다.

그 가운데 가장 마이크로소프트를 위축시키는 데에 공헌한 회사가 바로 구글이었다. 구글은 창립 때부터 이미 막대한 양의 데이터들을 선점한 상태에서 구소련 지역과 대한민국을 제외한 지역[3]에서 검색엔진 웹사이트의 왕으로 올라섰고, 유튜브의 인수를 통해 전 세계의 동영상 매체를 선점했으며, 구글 크롬으로 파이어폭스와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약점이었던 느린 웹사이트 접속 속도를 저격해 웹 브라우저 시장의 판도를 갈아 엎었다. 여기에 더해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 입지에 치명타를 날리고 구글이 새로운 IT업계 거물로 올라간 결정적 사건은 신생 PDA용 운영체제로 기획되었다가 아이폰을 보고 범용 휴대전화 운영체제로 방향을 바꿔 개발된 안드로이드 인수와 그로 인한 스마트폰 및 경량 태블릿 PC 시장의 등장이었다.

그로 인해 주로 PC용 운영체제 시장을 독점하던 전통적인 먹거리 윈도우즈는 점점 점유율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피처폰 및 PDA용 운영체제였던 Windows CE는 안드로이드의 범용성, 라이센싱을 받고 오픈 소스로 안드로이드 내부를 공개하는 높은 개발자 접근성 및 마켓(현 Google Play)을 통한 체계적인 애플리케이션 관리를 따라잡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루미아 시리즈로 유명한 핀란드의 노키아를 인수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스마트폰 시장에 진입하는데 실패했다. 또 급조하다시피 한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 엔진 사이트인 MSN과 Bing은 일부 희귀 데이터 검색 용도를 제외하면 2020년 현재까지도 잘 쓰이지 않는 비주류 검색 엔진이 되었고 Xbox 및 Xbox 360의 후속기인 Xbox One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에 밀려버리면서 사내 사업부마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플 역시 스티브 잡스가 귀환하면서 인텔의 x86계열 CPU를 채택한 새로운 맥을 발표하여 윈도우즈와 병행하여 사용하게 만들었고, 아이팟과 아이튠즈로 마이크로소프트의 Zune을 찍어 눌렀으며, 결정타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발표해 그걸 보고 따라온 후발주자인 구글과 스마트폰 및 경량 태블릿 PC 시장을 양분하여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한 탓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침체기를 겪게 된다.

그래도 최소한 재정 상태를 매우 안정적으로 만든 스티브 발머의 공적은 인정할 만했으며, 무엇보다 이런 마이크로소프트의 상황을 타개할 적절한 후임을 골랐다는 점에서 스티브 발머의 예지력이 빛을 발하게 되는데...

제 3대 회장 사티아 나델라 시기[편집 | 원본 편집]

그렇게 스티브 발머의 후임으로 인도 출신 직원이었던 사티아 나델라가 지명되었다. 사티아 나델라는 우선 스티브 발머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 진입 계획을 세부적으로 설계해 Azure를 B2B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 안착시키는 데에 성공했으며, Dreamspark 프로그램을 손봐서 Azure와 연계한 Azure for Student 프로그램으로 미래의 개발자가 될 대학생들을 Azure에 호의적인 소비자로 준비했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하드웨어 사업을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바꾸어 태블릿에 적합한 저전력 인텔 CPU와 휴먼 인터페이스에 최적화된 UI를 가진 윈도우즈를 탑재한 경량 태블릿의 명기로 인정받는 서피스 프로 3를 출시하여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 레퍼런스 전자기기 시리즈인 Microsoft Surface 라인업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마지막으로 Xbox 사업을 지속하는 것을 넘어 아예 구독경제를 표방하는 Xbox Game Pass를 내놓아 Xbox Series X/S 콘솔 게임기의 출시와 함께 PC와 콘솔게임기를 넘나드는 크로스 플랫폼 비디오 게이밍 사업을 성공시켰다.

다만 Windows 10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PC 자체를 쓰지 않는 IT기기 사용자들이 증가했고, 윈도우 사업부를 한 차례 축소하고 대신 도입한 정기 업데이트 식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는 윈도우 10의 주기적 업그레이드 방식이 되려 수많은 버그를 쉽게 낳는 문제 등으로 인해 B2C 시장에서는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한편 2016년 창립된 신경망 AI 모델 개발팀인 OpenAI를 지속적으로 후원하다가 2022년에 ChatGPT라는 대박을 터트리면서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수혜를 많이 받았는데, New Bing으로 불리는 Bing 챗봇 기능과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및 윈도우즈에 제공되는 Microsoft Copilot 시리즈로 GAN 기반 AI 서비스의 유행을 이끄는 데에 성공했다. 코타나 역시 GAN 기반 챗봇으로 대체되면서 대한민국에도 마이크로소프트 챗봇 서비스가 들어올 가능성이 커졌다.

제품[편집 | 원본 편집]

소프트웨어[편집 | 원본 편집]

하드웨어[편집 | 원본 편집]

웹 서비스[편집 | 원본 편집]

TMI[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이때 빌 게이츠는 처음에는 CP/M DOS를 제작하는 디지털 리서치를 IBM에게 주선해주고 베이식 인터프리터만 공급할 생각이었지만 디지털 리서치의 삽질로 인해 결국 빌 게이츠가 가져온 Q-DOS, 즉 MS-DOS가 DOS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2. 한글과컴퓨터가 만든 한글 시리즈의 완강한 저항 + 동아시아 문자 표기의 난이도라는 환상의 조합으로 토종 사무용 프로그램인 한컴오피스 시리즈를 완전히 고사시키는데 실패했다. 이후 한글과컴퓨터의 삽질과 문서 표준의 문제로 인해 민간 시장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완전히 역전하는 데에 성공했으나 한글과컴퓨터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전자정부프레임워크에 합류하여 사세를 보존하면서 hwp 파일을 공문서 표준으로 남기면서 doc 파일 호환성에 주력한 덕에 국민들도 그냥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둘 다 사는 것에 거부감을 덜 느끼는 편이다. 또 한컴타자연습의 보급도 한컴오피스가 살아남는 데에 영향이 있었다.
  3. 러시아 등 구소련 지역의 경우 얀덱스가, 대한민국에서는 네이버가 독자적 컨텐츠와 편의성, 국내 웹사이트 데이터의 선점을 통한 저항으로 검색엔진 사이트로서의 구글이 이들을 고사시키는데 실패했으며 후술할 유튜브와 안드로이드 덕에 지금은 해당 지역들에서도 구글이 선방하고 있으나 얀덱스와 네이버를 고사시키고 검색엔진 시장을 독점하는 데에는 결국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