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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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韓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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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왕조가 세운 한반도의 국가.

역대 한반도 국가 중 가장 비극적인 침략에 시달렸다. 고려원나라의 침공으로 인해 속국 신세가 되었고 부마국 대접을 받은 것도 비극이긴 하지만 조선이 임진왜란으로 대대적인 니혼진들의 침공을 받았던 것과, 병자호란때 임금이 대가릴 조아렸던 것, 일제강점기로 멸망당한 것에 비하면 글쎄...

권문세족의 머가리가 텅텅 비어 국정 운영과 사상 정립을 제대로 못하던 때에, 지식의 틈새시장의 선점을 노리고 초야에서 뛰쳐나왔던 신흥사대부가 세운 나라이기도 하다.

권문세족 새기들이 이권 챙기기에 급급해 갖가지 병신짓을 일삼는 것을, 애민사상과 성리학의 합리적인 가치관으로 비난하더니만 나중엔 지들이 똑같은 짓거릴 하고 자빠졌다. 초창기에 공을 세우고 각종 이권을 싹쓸이한 사대부는 흔히들 훈구파라고 부른다.

훈구파와 반대되는 세력을 사림이라고 부르는데 각종 사화가 터지면서 많이도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나중엔 훈구파가 물러나고 사림이 권력을 잡는다. 기어이 사림파가 승리한 것이다!

그랬더니만 이젠 지들끼리 동인이니 서인이니 남인이니 시발롬들이 편을 갈라서 지들끼리 뒷통수에 칼을 꽂고 지랄이 났다. 상복을 몇년을 입어야 하는가 같은 문제를 두고 아주 피터지는 병림픽을 벌이는데 존나 웃기는건 이 상복 병림픽이 왕의 정통성이 타당한가 타당하지 않은가를 두고 펼치는 우회적인 콜로세움이라는 사실이다.

양반들은 영원히 특권을 누리고 싶은 마음에 한자를 그렇게도 고집했다고 한다. 이를 기분 좋게 여기지 않은 갓종대왕께서는 훈민정음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혜택을 베풀려 하였으나, 정작 관아에서 일하는 놈들은 양반이 아니더라도 지 특권을 지키기 위해 한글의 사용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 놈들이 주로 썼던 것은 이두였다.

사실 갓종대왕께서 만든 훈민정음은 의미가 매우 크다. 용비어천가는 한글을 이용한 국문시가인데, 이러한 시가의 등장은 세계적으로 자부심을 가질 만한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애초에 한글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글자라서.

임진왜란이 터진 이후부터는 양반과 백성들 사이의 믿음이 끊겨버렸다. 전쟁이 터지니 양반이란 새기들이 가장 먼저 도망을 치네? 양반이 도망을 먼저 가는데 백성들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임진왜란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일뽕식 시선도 있다. 전쟁이 있은 후에 조선에 각종의 특이한 문화나 물건이 유입되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닌데 국토가 유린당하고 황폐화되고 사람들 죽어나간건 어쩔거여.

병자호란 때는 지랄맞게도 쉽게 털려버렸다. 강화도로 왕족들이 피난을 먼저 갔는데 다 잡히고 죽임을 당하고 난리가 났다. 김만중의 아빠인 김익겸도 강화도에 있다가 삼도천을 건넜다고 전해진다. 엉엉 쟤네들은 해전에 약할거 같이 생겼는데 징징징 ㅠㅜ

강화도가 함락되고 전라, 경상, 충청의 지원군들이 죄다 두들겨 맞아 쫓겨나고 남한산성 구조를 포기하자 인조도 결국 적에게 항복했다. 멘탈이 뒤져버린 것으로 보인다. 삼남 지원군이 다 뒤지고 강화도긴 함락되고 남한산성에 혼자 고립되니 도저히 살 길이 보이지 않았을거 같긴 하다.

다만 이 때의 재빠른 항복을 백성들이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들 존나게 빡쳤다. 양반들도 빡치고 백성들도 빡쳤다. 그래서 백성들은 임경업전이나 박씨전 등의 소설을 만들어 가상으로 조선이 위대한 패배를 하는 스토리를 감상하며 자기위안을 했다고 한다. 아 기분 째지구연.

영조정조의 시절에는 묘하게도 백성들이 살기 좋은 시대가 구현되었다. 나라를 세운지도 꽤 된 만큼 똑똑한 임금에 의한 국가 안정기에 들어선 것이다. 탕평책, 균역법, 삼복법, 신문고, 환곡분류법 등이 영조에 의해 시행되었고 정조는 규장각과 같은 문예 부흥, 실학 면에서의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정책을 폈다.

근대기가 오기 직전에는 혼파망의 시기였다. 일본은 상인을 비롯한 중간 계층이 사무라이들과 손 잡고 새 시대를 맞이할 만한 사상과 제도의 정비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조선은 여전히 신분제의 모순을 타파하지 못하고 안쪽에서부터 곪아가고 있었다.

동학이 등장하고 여자들은 규방가사 같은 문학으로 "더는 규방이 싫다 날 여기 처박지 마라!"하고 분노의 샤우팅을 쏟아내고 있고, 새로운 종교인 천주교가 들어와서 자유의 소중함을 외치고 있고 양반을 비롯한 특권계층은 점점 늘어나는데 나눠줄 특권은 바닥났고.

흥선대원군에 의해 개혁과 쇄국정책이 병행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의 밑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조선은 근대화를 맞을 준비가 안 됐는데도 서양에서는 지속적으로 조선의 근처를 기웃거렸다. 가장 문제가 되는건 사무라이와 중간 계층의 연합으로 군부 세력인 막부를 몰아내고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이었다.

덕분에 대한제국 같은 최후의 발악도 나타났다가 마지막에는 일본에 먹혀 강제 합병을 당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