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편집
배경 편집
전에 이미 정묘호란에서 지고 당했던 조선이지만 이번에도 청나라를 무시했고, 명나라를 따랐다.
전개 편집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광해군을 중립외교라는 명목으로 쫓아낸 인조와 사대부들은 전쟁 개시 직후 도망치기에 바빴다.
왕자와 신하들은 강화도로 도망쳤고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장기전 대비라기 보다는 이 때 이미 멘탈이 깨져있던 것으로 보인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고립된 채 지방의 구원군 들을 기다렸다. 청나라와 거의 정 반대편인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지원군이 인조의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벌써 격파당하고 대부분의 의병들조차 다 칼 맞고 죽거나 항복한 상태였다.
거기다가 남한산성 안도 내분에 휩싸였다. 주화파[1]와 주전파[2]가 나눠서 싸웠다.
믿었던 강화도까지 함락되자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도망쳐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그 뒤 삼전도에서 청 황제에게 머리에 피가 날 정도로 조아리고 왕과 신하의 관계로 충성을 맹세했다. 적장에게 대가리를 조아린 그의 모습은 현대까지도 놀림거리가 되어 조롱받는 중이다.
의의와 평가 편집
그나마 임진왜란은 온 나라가 뭉쳐 일본 침략을 막아낸 전쟁이라는 의미라도 있었던 전쟁이었다면 병자호란은 그딴 것도 없었다.
전자가 7년이나 끌었던 것에 비해 후자는 고작 한달 싸우고 진 전쟁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굴욕적인 전쟁이었다. 청나라가 애초에 전쟁을 길게 끌 여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