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우스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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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된 옛 신학학파로 예수가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 핵심 교리이다.

왜 중요하게 다뤄지는가?[편집 | 원본 편집]

기독교가 구약에 나온 하나님만 숭배하는 유대교와 달리 예수 역시 하나님이라고 믿게 되면서 사람들에게 혼란을 준 점이 있는데, 바로 유일신 체계 하에서 성부(하나님)과 성자(예수), 그리고 성령 간의 관계가 어떻게 되냐는 것이다. 이건 2000여년이 지난 현재의 기독교인들도 매우 어려워하는 부분인데 교리가 확립되지 않은 초기 기독교에서 이 부분은 반드시 해결하고 가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아리우스파가 창설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합법화되면서 교회 내부에서 최초로 일어난 정치적 알력 싸움이 해당 교리 문제로 인해 발생했다는 점에서 교회 내의 분열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교리[편집 | 원본 편집]

(당시 로마땅이었던) 이집트의 아리우스파는 신은 아니고 완전한 인간이라는 식으로 예수를 설명했고, 성령->성자->성부 순서로 종속성이 있다는 것이 아리우스파의 핵심 교리였다.

문제는 로마가 기독교를 불법 종교로 규정했을 때는 그 넓은 로마 각지에서 모인 애들이 교리에 대해 토론한답시고 컨퍼런스 룸같은 데 빌려 모이기도 전에 로마 경찰에게 잡혀 불타죽을 걸 걱정해야 했고 그렇기에 모든 교회가 지하교회인 상황에서 얘네 보고 딱히 이렇다 저렇다 할 것도 고사하고 얘네가 뭔지 알 기회도 없었으니 이런 교세가 퍼져도 딱히 터치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교리가 탄생하고도 지속적으로 그 교리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3개의 상, 즉 3개의 위격이 1개의 존재에 모두 담겨있다는 애매모호한 표현 대신 '성부에게 성자가 종속되고 성자에게 성령이 종속된다'는 설명이 꽤나 단순해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쉬운 설명에 혹하기 시작했다.

이단 지정[편집 | 원본 편집]

하지만 기독교가 합법화된 뒤 왕래가 많아지자 이 사실을 안 주류 기독교파였던 아타나시우스파와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니케아 지역에서 공의회란 걸 열어

'아리우스파는 기독교가 아니고, 삼위일체는 진리다'를 정식 교리로 채택하고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파문해버렸다.

질긴 생명력과 파멸[편집 | 원본 편집]

그러나 그 이후에도 아리우스파는 로마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편, 게르만족에게 대대적인 포교를 시도하여 알프스 이북 지역을 아리우스파의 영향권에 두는 등 이단 지정 후에도 질긴 생명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테오도시우스 1세 때 로마 내에서 아리우스파가 절멸하고,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게르만족 왕국들이 교황의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전세가 뒤집혀 결국 아리우스파는 완전히 절멸하고 만다.

교훈[편집 | 원본 편집]

종교의 교리가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볼 때 어느 정도의 교리 이해력이 있는 사람만이 중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교훈으로 남겼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이해하기 쉽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주장에 대해 빠돌이 짓을 하면 결과가 참혹하다는 점을 후세 기독교인들에게 준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