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큰숲백과, 나무를 보지 말고 큰 숲을 보라.
광주

휘장
표어
내일이 빛나는 기회도시 광주
지역 정보
나라 대한민국
종류 광역시
입법부 광주광역시의회
행정구역 광주광역시
설립일 1995
웹사이트 www.gwangju.go.kr

광주광역시는 대한민국의 광역시이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원래는 물들, 무등[1], 무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해당 지역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영산강의 이명인 극락강을 따라 강을 건너가면 나오는 빛나는 이상향이라는 뜻에서 빛고을로 고려 시대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이 지역명 유래라고 보는 것이 가장 큰 지지를 받는다.

옆 동네 나주시에 밀려 오랜 시간 한적한 시골 동네로 남아있다가, 대한제국 시기에 단발령에 대한 저항이 나주에서 극심하게 일어났는데, 그 때문에 행정 중심지를 광주로 옮긴 것이 원인이 되어 일제강점기부터 광주가 나주를 제치고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후 광주군이 광주시(이후 광주직할시)와 광산군으로 분리되었으며, 1986년 광산군 남부 지역 일부가 도농분리로 송정시로 잠깐 출범했다가 1988년 광주직할시-송정시-광산군 3자 통합으로 오늘날의 광주광역시 모습을 갖추었다.

지리[편집 | 원본 편집]

남북으로 영산강이 관통한다.

대구, 청주와 함께 이곳도 분지 지형이며, 특히 시 외곽을 둘러싼 산들 중 무등산이 가장 높은데, 무려 최고봉인 천왕봉의 높이가 1187m다! 서울의 북한산 높이도 백운대의 836.5m가 최고라는 점을 생각하면 대단히 높다. 그래서 의외로 더우며, 도시의 열섬 현상까지 더하면 대구만큼은 아니어도 여름 평균 기온이 상당히 높다. 거기에 공기 흐름이 무등산 같은 높은 산에 부딪혀 기후를 습윤하게 만들기 때문에 강수량/강설량도 높은 편이다.

나주시, 화순군, 장성군 등과 광역권을 형성하고 있다.

행정[편집 | 원본 편집]

문화[편집 | 원본 편집]

음식[편집 | 원본 편집]

광주식 육전이 유명하다. 육전이나 그와 비슷한 음식은 다른 동네에도 있으나, 2010년대 들어 KBS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1박 2일에 광주 육전이 등장한 것을 시작으로 광주의 육전 식당들에 대한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어쩌다 보니 광주식 육전이 유명해진 것. 덕분에 광주에서 팔리는 광주 육회(생고기) 등 다른 고기 요리가 주목받으면서 관광 수요를 아주 조금이나마 챙겼다.

광주랑 고창에는 특이한 짬짜면이 있다고 한다. 짬짜면을 두 부분으로 구분된 그릇이 아니라 그릇에 그냥 같이 담아준다! 국물이 많은 일반 짬뽕이 아니라 볶음 짬뽕이랑 짜장이랑 같이 주는데 비벼먹으면 오묘한 맛이난다고 한다. 단, 맛있는 집만 골라가도록 하자.

정치[편집 | 원본 편집]

대체로 호남 지역의 정치적 성향과 비슷하지만, 그래도 대도시답게 주민들의 정치적 성향이 타 호남 도시에 비해 조금 더 다양한 편이다.

교통[편집 | 원본 편집]

광주시의 고속버스하면 광천동의 유스퀘어(광천터미널)을 빼놓을 수 없다. 호남 최대이자 대한민국 최대의 고속버스터미널이다. 이 때문에 고속버스터미널 앞을 지나가는 무진대로는 최대 왕복 16차로라는 무지막지한 넓이를 자랑한다.

반면 철도교통은 빈약한데, 호남선은 서남쪽 끝자락의 송정동을 지나가 접근이 어려우며, 광주선은 서울 방향으로 가는 데 불리하여 이용객이 매우 적고, 도시철도는 광주 도시철도 1호선 한 개인 데다가 그마저 미래의 도시 계획을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노선 선정[2]으로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항공교통의 경우 광주공항이 있으며, 제주 갈 때 가끔 사용할 수 있는 정도를 제외하면 규모가 크지 않다. 광주광역시 도시 개발 계획에 방해가 되는 부분이 커서 추후 무안군의 국제공항과 통합이 계획되어 있으나, 무안국제공항의 자체 경쟁력이 전무하고 무안으로 가는 제대로 된 교통망이 고속도로 한 개 뿐이라 통합 이후 수요 감소가 심각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광주 동쪽의 큰 산에 무등산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어원이라고 한다.
  2. 개통 이전까지만 해도 구도심에 인구가 많아 나름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하철을 지었으나, 개통 이후 북쪽 외곽이었던 첨단, 수완 등지의 신규 택지지구로 인구가 대거 빠져나간 데다가 광주광역시 도시 성장을 지탱해왔던 전라남도청이 목포 쪽으로 이전하면서 수요 타격을 제대로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