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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큰숲백과, 나무를 보지 말고 큰 숲을 보라.

유비는 자신이 황족이라는 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삼국지에서 유씨 황가의 구성원들은 하나같이 뭔가 나사가 빠진 사람들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유비는 자신이 나사가 빠진 놈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처신했기 때문에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 후한 12대 황제였던 유굉이야 유씨 황가에서 제일 가는 함량미달이고, 그 아들 유변 역시 마찬가지로 함량미달이고, 후한 14대 황제였던 유협은 지 아버지나 지 형보다는 그나마 뛰어나긴 했지만 동탁과 조조 등에 시달려 제대로 제국을 다스리지 못한 허수아비 천황이었으며, 유우는 인간성 하나는 끝내주게 선량했으나 뭐가 중요하고 뭐가 쓸모없는지를 파악하는 능력이 없었다. 유언은 지 좆대로 익주에서 황제을 꿈꾼 역적이고 유표 역시 지 좆대로 형주에서 황제를 꿈꾸다가 호족에서 통수맞고 식물권력이 되었다, 유장은 착하기만 하지 그냥 동네바보에 불과했으며, 유요는 독불장군이며, 유엽은 한나라 황족이라는 주제에 위나라로 배신때린 그야말로 자존심도 없는 새끼였다.

조조와 손견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것과는 달리 유비는 남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 차이가 명백하며 유비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위인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언제나 타인의 조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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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한 한나라 황실의 후예로서 한나라 6대 천황이었던 유계()의 아들 중산정왕 유승()의 후손이다. 선조였던 유승의 아들 유정()이 탁현의 육성정후에 봉해졌으나, 주금 문제에 좌죄되어 후작을 잃었으며 이후의 세계는 정확히 알수 없으나 유비의 조상들은 대대로 탁군에 정착해서 살았던 것 같다. 조부 유웅, 부친 유홍은 대대로 주군에서 복무했다. 유웅은 효렴으로 천거되어 관직이 동군범령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그 뜻와 기개, 야망이 남달랐던 인물로 유비가 어릴 때 종중의 여러 아이들과 함께 나무 아래에서 놀면서 "나는 꼭 이렇게 깃털로 장식된 덮개가 있는 수레에 탈 거야"라고 말해서 숙부 유자경()이 가문을 망치겠다고 꾸지람을 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깃털로 장식된 덮개가 있는 수레'라 함은 곧 천황의 수레를 타겠다는 발언이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독서를 즐겨하지는 않았고 동물, 식물, 음악, 미술, 아름다운 의복 등을 좋아했으며 말수가 적고 아랫사람들을 잘 대해주며 기쁨이나 노여움을 얼굴 표정에 잘 드러내지 않았고, 호협(豪俠)들과 교우를 맺는 것을 좋아하니 젊은이들이 다투어서 그를 따랐다고 한다.

이후 15세가 되자 모친이 학문을 익히도록 하자, 동종인 유덕연(), 요서 사람인 공손찬()과 함께 예전에 구강태수를 지낸 같은 장군 출신으로 전쟁에서 큰 활약을 했던 노식()을 섬기게 되었으며 이때 후일 뒷배가 되어준 공손찬과 만나 형으로서 섬겼다.

황건적의 난 이후 서주를 얻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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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바람.


통수질과 쓰리질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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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는 삼국지에서 통수의 달인으로 유명하다. 보통 여포, 마초, 장료 등 어지간한 배신의 달인들과도 비교되곤 하는데 뭐 돗자리 장수 윾가놈이 통수를 안 친건 아닌데 윾가안티들이 과장한것도 꽤 있다.

  • 공손찬은...이걸 통수친다고 해야하나? 하여간 서주 이후에는 공손찬이랑 손절매 한 건 맞으니까 통수는 맞을지도. 사실 이때 쯤 공손찬이 손절매 할 정도로 맛이 가 있던건 사실이다.
  • 서주에서 여포와 연합했다. 여포와는 서로 통수를 치고 통수를 맞던 사이...라기엔 유비가 좀 더 통수를 많이 맞긴 했는데 우선 정사에서도 유비가 도겸이 죽고 도겸이 서주를 준다했고 이에 유비가 공융의 추천을 받아서 서주자사가 된 거 맞다. 이전판에서 유비는 정사에서 도겸이랑 만난적도 없다고 하는데 그런 새끼한테 서주를 물려주냐? 하여간 도겸한테 아들도 둘 있었는데 물려주기는 윾가놈 물려준건 사실이다.
이로부터 2년후 연주에서 조조에게 깨진 여포를 유비가 받아주어 소패에 여포를 놔두었는데 원술치러 간 사이에 하비에 있던 조표랑 장비가 싸우는 바람에 조표가 여포를 불러들이고 유비는 통수맞고 여포가 원래 머물던 소패로 돌아간다. 이때 기령하고 유비가 시비가 붙으니까 유비는 지 동생이라면서 창에다가 활 쏴 맞추는 퍼포먼스 보여주면서 구원해주고 생색내는건 덤이다.그래넣고 소패에서 세력을 유비가 세력을 키우자 여포가 또 다시 통수처서 유비는 견디지 못하고 조조한테 튄 다음 예주목이 되어 패성에 주둔한다. 이때 유비의 군사가 여포의 말을 도둑질을 했는데 여포는 올타꾸나하고 또 공격해서 유비가 도망갔다. 연의에서는 장비가 주도적으로 말 도둑질 했다고 나오는데 정사엔 그런말은 없다. 결국 유비는 조조와 함게 여포를 쳐서 여포를 사로잡는데 여포는 그동안 해온 짓대로 자기를 살려주면 유용하게 쓸거라고 조조에게 말했으나 유비가 '쟤가 섬기던 정원이랑 동탁의 말로 모르겠음?'이라고 말해 여포는 머가리가 날아간다. 뒤지면서 '귀 큰놈이 제일 못 믿을 놈'이라고 여포가 소리를 질렀는데, 글쎄...유비도 통수왕이긴 한데 일생을 통수질로 살아온 이 새끼가 할말은 아닌듯 싶다.
  • 이 공로로 조조는 헌제에게 상소를 올려서 유비에게 좌장군이라는 관직을 하사하게 했다. 그러나 유비는 또 조조를 암살하려다가 들켜서 서주로 도망가 조조 부하 차주를 죽이고 서주를 다시 탈환하였으나 조조에게 탈탈 털려 원소에게로 도망쳤다. 이 와중에 관우고 장비고 다 버리고 튀었다. 관우는 이후 조조에게 들어갔는데 진의록의 아내인 두씨 부인을 조조가 날름 가져가 버려서 별로 좋은 감정도 없었는데 일단 이렇게 되니 '시발 일단 살고나서 유비한데 돌아가야지 더러워서' 하고 있었다. 장비는 망탕산으로 도망가서 도적이 되었다고 연의랑 정사랑 헷갈리는 병신이 있는데 정사상에선 여남에서 떠돌다가 하후씨 로리 잡아다가 결혼했음. 근데 이건 황제가 조조를 제거하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이거 씹으면 일단 너 역적ㄳ.
  • 조조를 피해 도망친 유비는 원소에게 가 빈대 붙었다. 이에 원소는 안량문추가 용맹하지만 대군을 이끌만 자질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는 문추와 같이 공동으로 장군이 되어 관도대전에 참전했다. 이후 문추가 격파되고 원소가 조조의 후방을 교란하라고 여남으로 보냈다. 이후 조조의 뒤통수를 끊임없이 휘갈기다가 관도대전을 이기고 직접 친정한 조조한테 깨져서 유표에게 달아난다. 유비는 여남에 간 이후 복귀하지 않고 그길로 곧장 옆이 있는 신야로 튀었는데 이는 유표가 원소가 우호관계에 있어서였다. 애시당초 여남에 원소가 유비를 보낸것도 '시발놈아, 조조 뒷통수 치라고' 독촉하려고 보낸건데 유표는 조조 뒷통수 칠 생각은 안하고 유비만 받아줬다.
  • 그 이후 원소 세력이 조조에게 박살나자 유비는 신야에 거점을 확보했다. 하지만 조조의 공격을 받고 유표에게 형님거리면서 SOS를 쳤고 그에 따라 유표에게 구조되었으나 유표는 유비를 그냥 신야에 처박아두고 쓰지 않아서 6년동안 유비는 허송세월하면서 논다. 비육지탄 고사도 이때 생긴것. 이후 형주는 채모에 의해 조조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영웅기에 따르면 유표가 유비더러 나 죽은 다음 형주는 니가 먹어라라고 했다는데 유비는 거절. 배송지가 이미 유종을 세울 생각을 했는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의문을 표했다. 이후 형주를 얻고나서 유표의 아들 유기를 형주자사로 옹립한 다음 실권은 다 자기가 쥐었다. 이후 유기는 형주자사 되고 얼마 안 되서 병으로 일찍 뒤진다.
  • 조조가 형주를 얻은 후 유비를 공격하려 하자 유비는 손권과 동맹을 맺는다. 이후 손권과 유비는 함께 조조를 적벽에서 격파했다. 이때 주유는 유비군과 함께 공격해서 얻은 땅을 유비한테 빌려주는데 유비는 주유 죽고 이걸 그대로 배째라마이싱 했다. 하지만 그 후 익양대치가 발생하자 어쩔 수 없이 형주 3군인 강하, 장사, 계양은 손권 니가 가져라 하고 협약을 맺었다. 물론 실질적으로 강하는 언제부터인지 손권땅이었으므로 장사, 계양만 준거. 사실 손권과의 관계도 서로 통수를 거듭한 관계로 유비랑 결혼한 손권 여동생이 오나라 신하들 데리고 다니면서 깽판치다가 유선 데리고 오나라로 튀는 시도를 조운과 제갈량이 막은 전적도 있고...하여간 서로 통수치기 바빴다. 이 통수질은 이릉대전 끝나고 나서 둘 다 위나라한테 후달리게 생기고 나서야 끝났다.
  • 유장장로가 오두미교를 퍼뜨려서 정권이 불안해졌다. 이에 친척인 유비를 초빙해서 장로에 맞서려 했으나 진정한 주적은 유비였다. 유비는 유장을 내쫓고 익주를 훔쳤다.

이쯤에서 유비의 배신전적을 따지면 주요 피해자는 세명이 된다.

  • 조조 : 사실 유비가 조조 휘하에서 반동탁연합에 가담한 적이 있는걸로 봐선 초기엔 그렇게 사이가 나쁘진 않았던거 같은데 이후 서주에서 도겸의 지원군으로 유비가 와서 맞선 뒤에는 쪼까 껄적지근한 사이가 된거 같기도 하다. 정욱이 대놓고 쟨 죽여야 한다고 하기도 했는데 이땐 조조가 그의 말을 들어주진 않았다. 어쨌거나 여포의 통수를 맞고 조조에게 돌아가지만 결국엔 유비는 헌제로부터 조조 암살 밀서를 받고 조조의 부하로 서주를 다스리던 차주를 죽이고 통수를 쳐서 원소 휘하에 들어간다. 이후 근 20여년 동안 유비는 조조의 통수를 치면서 여기저기서 반조조 행동을 펼친다.
  • 손권 : 겉으로는 동맹 맞는데 실제론 형주문제로 끊임없이 서로 통수질과 쓰리질을 반복한 관계, 결국 이런 통수들이 이어지다가 관우가 죽고 이릉대전에서 유비가 패한 후 오나라가 조비의 위나라군을 막는 과정에서 '서로 시발 어쩔수 없지' 하면서 동맹을 맺은 이후 딱히 서로 통수치고 그러진 않았다. 그냥 쌍방과실.
  • 유장 : 진짜 제대로 유비가 통수친 케이스, 유장은 장로 치려다가 친족인 유비에게 통수 맞고 형주로 쫒겨났다. 정사 삼국지 저자 진수는 유장이 그리 된건 유장이 통치를 못했으니 그래도 쌈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물론 다른 주석자들이 반박하긴 하지만.

원소하고 유표는 좀 애매한게 유비는 거의 원소하고 붙어다니면서 조조 통수치려다가 원소 우호세력인 유표한테 들어갔고 유표는 유비를 조조하고 싸울만한 전방인 신야에 처박아두고 쓰질 않았다. 뭐 유표 죽고 나선 유종은 유비가 뭐 어떻게 할 사이도 없이 항복했고 이후 유기랑 유비는 동맹 상태였으니 딱히 통수쳤다고 보기도 어렵고.

그리고 여포는 이런 통수질과 쓰리질의 달인 유비한테 세번이나 연속으로 통수를 쳤다. 과연 삼국지 최고 통수왕.

알고보면 인사업무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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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는 사람배치하는 능력은 기똥찼다. 솔까 난 악질촉까인데 이건 인정 안할수가 없다. 진짜 유비만큼 사람 잘배치하는 사람 드물다.

한중 전투 이후 한중 태수에는 장비, 조운, 황충, 위연 등의 후보군이 있었다. 사람들은 장비가 유비와 친분이 깊고 서열도 꽤 높은 편에 속해서 당연히 장비가 될 줄 알았다. 근데 위연을 앉혔다. 과연 위연은 한중에서 군사를 충실하게 기르고 제갈량의 북벌에서도 큰 공을 세운다.

유비는 제갈량에게 평소에 "마속은 입만 살아있어서 나불나불거리기만 하니까 절대 관직같은거 주지 마라. 정 주고 싶으면 의랑을 주면 잘하겠다."라고 조언했다. 제갈량이 똥고집 쳐부려가며 이 유비의 조언을 개무시해서 발생한 참사가 바로 가정전투다. 유비의 무서울만큼 정확한 사람보는 안목의 위엄. 그래놓고 촉나라 2세대들 이릉에서 으왕 쥬금 해서 마속 등용을 강요했다. 결론은 유네바야시 비이콘.

유비는 유파를 계속 쫓아다니면서 무릎꿇고 빌어가면서까지 모셔오려 애를 썼다. 유파는 유비가 싫어서 남만까지 도망쳤다. 그런걸 유비는 빌고 사정하고 애원해가면서 기어이 유파를 끌어들였다. 근데 웬걸? 촉나라 경제를 유파 혼자 다 만들어놨고 촉나라가 삼국지에서 경제부국으로 거듭나 촉나라 돈이 위나라 및 오나라에서도 통용이 될 정도였다.

유비는 양의가 같잖게 굴고 어렵게 모셔온 유파선생에게 계속 시비를 걸었다. 이에 유비는 양의가 하도 같잖게 개지랄을 떠니까 양의에게 홍농태수라는 빈껍데기 관직을 줘서 궐 밖으로 내쫓았다. 그걸 제갈량이 실권잡자 다시 불러들여 병크를 터뜨렸다. 양의가 관직에 있다는 것서부터가 이미 에러다. 그 양의새끼? 지가 승상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위나라로 귀순할껄!"이라고 씨부려 유비의 정확한 인재안목을 또다시 적중시켰다.

"선이 작다고 하여 이를 행하지 아니하지 말고, 악이 작다고 해서 이를 행해서는 안 된다."

유비라는 놈은 자신의 부족함을 타인의 능력으로 꾸역꾸역 채웠다. 하지만 일단 자신의 사람이 되면 제대로 된 사랑을 베풀었다. 위연은 유비에게 임관할 당시 신참 듣보잡 나부랭이 취급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유비에게 엄청난 신뢰를 줬는데, 유비는 위연의 충성심을 어여삐 여겨 위연에게 한중태수라는 파격적인 자리를 줬다. 이게 왜 파격적이냐 하면 위연의 경쟁상대가 다름 아닌 장비와 조운이었기 때문이다. 위연 따위가 도저히 한중태수로 임명될 것 같지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신뢰를 하면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것이 유비였다.

그리고 유비가 조조나 손견보다 더 높게 평가받는 것이 바로 인격이다. 조조는 자신을 분노하게 하는 자들을 싹쓸이하고 손견은 한나라 황실에 걸림돌이 되는 자들을 싹쓸이했다. 하지만 유비는 절대로 싹쓸이하는 법이 없었다. 이방이 오나라로 항복했을때 유비의 외척이자 그 형인 미축이 그 소식을 듣고 스스로를 결박하고 도부수랑 같이 황궁에 와서 "전하, 신이 무능하여 신의 동생인 미방이 오나라로 투항했습니다. 신을 죽여주십시오!"라고 유비에게 빌었다. 하지만 유비는 호쾌하게 웃은 뒤 미축의 결박을 풀어주고 도부수를 물러가게 한 다음 미축을 껴안고 "미축 공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미축을 용서해주었다.

사실 이릉대전 역시 관우만 살았으면 절대로 일으키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유비는 자기 휘하의 장수들을 핏줄로 여겼다.

능력도 딱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훈련했다. 조조처럼 전체 분야에 걸쳐 잘한 것도 아니고 손견처럼 싸움만 무식하게 잘했던 것도 아니고 가후처럼 머리만 무식하게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유비 본인은 자신의 무능함에 대해 별로 심각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자신의 무능함을 다른 사람으로 커버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신의 휘하 사람들에게는 항상 잘했고 자신의 부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좋아했다. 게다가 자신이 나설 수 있으면 최대한 나서고 어떻게든 유능한 인재를 자신의 부하로 삼으려고 죽을힘을 다했다.

일례로 유파라는 인물이 있는데 유파는 항상 유비를 증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자존심 따위 다 버리고 유파를 중용하려 했고 계속 도망쳤으나 끝내 더는 도망칠 곳이 없어서 유비의 부하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유파가 유비의 부하가 되자 촉의 재정 상태를 아주 넘사벽 수준으로 만들어놓았다. 촉을 거의 재벌 수준으로 발전시킨 게 유파였고 유비는 유파가 그런 인물인지 일찌감치 간파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