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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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편집 | 원본 편집]

원소는 원봉의 아들로 이 원씨 가문이야말로 한나라 최고의 명문 가문이다. 3대를 거치는 동안 한나라의 사실상의 최고봉 관직인 3공(사공, 사도, 태위)을 4명이나 배출했으며, 여자 하나 잘 태어나서 팔자가 완벽하게 달라진 하씨 가문의 하진과 비교를 할 순 없었으나 젊었을때는 하진의 부하였다.

뭐 이렇게 말하면 "이야~ 원소야말로 정말 끝장나게 좋은 가문 사람이로구나~!"라고 감탄을 하겠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원소는 귀족 남자와 노비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였는데, 이 때문에 같은 가문의 적자인 이복동생 원술()에게 매일 "형님"이 아닌 "천민 핏줄 새끼"라는 호칭을 듣는 굴욕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야만 했다. 이 때문에 원소와 원술은 형제이긴 하나 그 사이는 원수지간이었다.

일생[편집 | 원본 편집]

어린시절[편집 | 원본 편집]

어린 시절부터 삼공부 고위 관료들의 주목을 받아서 낭(=고관의 하급부관)으로 일하다가 20세에 벽소되어 복양현장에 임명되었는데 청렴하고 깨끗하다는 평판이 두루 있었고 조조와는 어린 시절부터 교분이 있었다.

6년상[편집 | 원본 편집]

원봉의 정부인이자 원술의 친어머니가 죽었을때, 원소는 이를 계기로 벼슬을 그만두고 원씨의 본적이 있는 여남으로 내려가 시묘살이를 하며 삼년상을 지냈다. 탈상을 마친 후 곧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고아였으나 상복을 입지 않았던 것을 추감하여 아버지(=원성)의 삼년상을 연이어 지냈다. 이런 기이한 행보로 인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다. 덕분에 많은 빈객들이 찾아왔는데 이때 원소 또한 누구를 만나더라도 귀천을 막론하고 예를 갖춰 대하는 등 항상 정중하고 겸허한 태도를 유지했고 이는 곧 좋은 평판으로 이어졌다.

하진 휘하[편집 | 원본 편집]

원소는 하진을 섬기며 하진의 측근 장진을 통해 하진에게 먼저 접근해 환관 세력을 축출할 것을 권하는 등 직속 상관인 건석을 배신하고 하진을 부추겼다. 하진은 건석을 죽이고 그가 이끌던 서원군은 해체되어 하진의 휘하로 편입되면서 하진은 모든 권력을 독점했으며 서원군의 2인자 격이었던 원소는 이 과정에서 하진의 핵심 측근으로서 입지를 확고하게 굳힌다.

이후 하진이 암살되자, 도성을 장악하기 위해 장양이 임명한 사례교위 등 친환관계 관료들에게 선수를 쳐 그들을 모두 살해한 뒤 궁정에 돌입해 환관세력을 철저히 주살했으나 마침 지방에서 올라와 있던 동탁이 원소보다 먼저 황제의 신변을 획득했으므로 결국 정권 장악에 실패했다.

반동탁연합의 맹주[편집 | 원본 편집]

원소는 도성을 제압한 뒤 황제를 폐위하려던 동탁과 대립하던 끝에 결국 기주 발해군으로 달아나 그곳에서 세력을 형성하였다. 폐위를 둘러싼 동탁과의 언쟁중 폐위를 강행하겠다는 동탁의 협박에 칼을 뽑아 읍하며 "천하에 힘있는 자가 동공 뿐은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그대로 자리를 떠난 것은 유명한 일화.

이 이전에 동탁은 나름대로의 민심 수습책으로 영제 시대의 부패한 분위기를 청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따라 청류파의 명사들을 대거 기용하며 각지의 자사,태수로 임명했다. 이는 결과적으론 오히려 역효과로 작용했는데 이렇게 임명된 태수와 자사들은 모두 원소의 거병에 호응하고 연합해 원소를 맹주로 추대하게 된다. 18로 제후가 이것이다. 그러나 이 시도는 동탁이 장안으로 도망가고 결속력이 흐트러져서 무산된다.

하북의 맹주, 관도대전[편집 | 원본 편집]

이후 공손찬, 장연을 멸망시키고 하북 4주를 평정했다 .199년 3월, 1년이 넘는 공성 끝에 역경성을 함락시키고 공손찬의 무리를 병합해 하북 4주를 평정한 원소는 수십만의 병력을 거느리게 되었으며, 교만해져 조정에 공물을 바치지 않았다고 한다. 원소는 조조를 관도에 몰아붙여 전세를 매우 유리하게 이끌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나 원소 세력 내부의 정쟁과 장기화된 전선에 대한 의견대립의 결과 허유가 조조에게 투항해 순우경군의 배치 등 주요 기밀들을 누설하면서 오소에서 숙영하던 순우경군은 조조의 기습을 받아 전멸하고 호송되던 군량 또한 불타게 된다.

군사를 수습하고 하북으로 돌아간 원소는 201년, 반기를 든 군현들을 모조리 쳐서 제압하며 다시 세력 기반을 굳건히 했으며 재차 원정에 나서 조조를 칠 것을 계획하지만, 이듬해 5월 병이 들어 피를 토하고 사망

평가[편집 | 원본 편집]

기록에 의하면 원소는 투구를 절대로 쓰지 않았으며 대신에 점잖은 패션아이템 정도였던 모자나 두건 따위를 썼다.

조조는 원래 유비 손권 좆밥 연맹보다 원소 아들래미들의 연합에 더욱 힘을 썼다. 적벽이랑 둘 다 신경쓸 정도면 관도에서 겜 끝났다. 근데 조조는 적벽에서는 손권과 1:1로 다이떠서 졌다.

유비새끼 싸다구 후려갈길 정도로 효웅이었고 원소가 죽었을때 백성들이 존나게 슬퍼했다.

연의에선 가문빨 존나 내세우는데 엄마가 노비인 유복자이다. 그러고도 후한 최고 명문가인 원가의 대표 아이콘이 되었다. 다만 족보 세탁으로 일찍 죽은 숙부의 아들로 호적을 세탁한 것은 좀 어두운 일면이다. 원술 시발롬이 존나 질투한건 덤. 조조나 원술새끼가 원소깔때 하는 소리는 종놈자식이라는 말 한마디 뿐이다. 반면 원소새끼도 조조를 깔때 하는 소리가 근본없는 자식이다. 조조는 환관 조등의 의붓손자였다. 천하의 조조새끼조차 원래 원소의 밑으로 들어갈걸 심각하게 고려했었다.

연의에선 십상시 씹새들 조질때 조조가 대표가 안되게 졸렬갑 모습을 보였지만 여기선 전부 다 떠받든다. 조조의 기록인 무제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