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숲:Sudo위키/정노풍
鄭蘆風
1903 ~ ?
개요
정노풍 (鄭蘆風) 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계급적 민족의식이라는 독자적인 문학관을 제창하며 계급적인 문학과 민족적인 문학의 타협을 추구하였습니다.
그에 관해 상세하게 다룬 책으로는 박경수의 『정노풍 문학의 재인식』 (역락, 2004) 이 있습니다. 이 책은 몇 편의 연구 논문[1]을 제외하면 정노풍에 대해 가장 상세하게 다루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의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수록하고 있습니다.
생애
정노풍은 1903년[2]에 태어났으며 본명은 정철(鄭哲)입니다[3]. 정확한 출생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시 중 고향에 대한 의식이 많이 반영된 곳이 평양 근교의 장소들이므로 평양 출신이거나 그 근방이 고향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1927년 11월 이후로 '계급적 민족의식'이라는 독자적인 문학관을 내세우면서 문학평단에 참여하면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발표했던 글의 대부분은 이 시기에 발표되었으며, 1926년 6월부터 1930년 7월까지 시 98편, 문학평론 24편, 시론과 수필 4편을 발표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4]
이후 갑작스럽게 작품활동을 중단하였으며, 잡지 『별건곤』 1931년 2월호의 지상고문란 (誌上顧問欄) 에는 "일시 「민족적사회주의문학」의 제창자 정노풍 씨의 기후 (其後) 휴식 <안성 일문생 (一間生)> 일설엔 「고문 (高文)」시험 준비 중 우 (又) 일설엔 모 도청 (道廳)에 재직중." 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1934년에 다시 활동을 재개하여 1935년 3월까지 문단에서 활동을 하였으나 다시 종적을 감추었고, 현재까지도 그가 은둔 이후에 어떻게 살았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작품
시
- 대동강의 겨울 (1926.6.27.)
- 죽음 (1927.11.16.)
- 애별 (1927.12.4.)
- 어듸로 갈냐? (1928.8.28.)
- 닛치지 안는 사람 (1929.8.28.)
- 명암의 기슭에 서서 (1929.10.)
- 압록강 가에 서서 (1929.10.15.)
- 울지마라 아기야 (1929.10.29.)
- 열매 일흔 볏닙 (1929.11.2.)
- 고향 그립어 (1929.11.5.)
- 돈 못 벌엇네 (1929.11.5.)
- 집 일흔 아희 (1929.11.15.)
- 늙은 해 (1929.12.17.)
- 해 마중 가자 (1930.1.1.)
- 겨울비 (1930.1.20.)
- 웃는 낫이 그리워 (1930.5.1.)
- 애창 (1935.1.)
Sn
- ↑ 이 책의 부록으로 정노풍에 대한 논문이 수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 ↑ 정노풍이 김기진과 비평 논쟁을 하면서 『조선일보』에 발표했던 글인 「전체성과 특수성의 전망·4」 중 "八峰이나 無涯나 蘆風이나 年齡 아즉 三十 未滿의 癸卯生으로서" 라는 부분이 있는데, 팔봉 김기진과 무애 양주동이 모두 1903년(계묘년)에 태어난 것이 확인되었으므로 정노풍 역시 1903년생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 『문예공론』 제2호 (1929년 6월 발간) 의 본지집필제가 (本誌執筆諸家) 를 통해 확인된 것입니다.
- ↑ 박경수, 「정노풍의 계급적 민족의식의 문학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