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
천황 계보[편집 | 원본 편집]
순번 | 천황명 | 재위기간 | 순번 | 천황명 | 재위기간 |
---|---|---|---|---|---|
1 | 진무(神武) | 前660 ~ 前585 | 66 | 이치죠(一條) | 986 ~ 1011 |
2 | 스이제이(綏靖) | 前581 ~ 前549 | 67 | 산죠(三条) | 1011 ~ 1016 |
3 | 안네이(安寧) | 前549 ~ 前511 | 68 | 고이치죠(後一條) | 1016 ~ 1036 |
4 | 이토쿠(懿徳) | 前510 ~ 前477 | 69 | 고스자쿠(後朱雀) | 1036 ~ 1045 |
5 | 고쇼(孝昭) | 前475 ~ 前393 | 70 | 고레이제이(後冷泉) | 1045 ~ 1068 |
6 | 고안(孝安) | 前392 ~ 前291 | 71 | 고산죠(後三条) | 1068 ~ 1073 |
7 | 고레이(孝霊) | 前290 ~ 前215 | 72 | 시라카와(白河) | 1073 ~ 1087 |
8 | 고겐(孝元) | 前214 ~ 前158 | 73 | 호리카와(堀河) | 1087 ~ 1107 |
9 | 가이카(開化) | 前157 ~ 前98 | 74 | 도바(鳥羽) | 1107 ~ 1123 |
10 | 스진(崇神) | 前97 ~ 前29 | 75 | 스토쿠(崇徳) | 1123 ~ 1142 |
11 | 스이닌(垂仁) | 前29 ~ 70 | 76 | 고노에(近衞) | 1142 ~ 1155 |
12 | 게이코(景行) | 71 ~ 130 | 77 | 고시라카와(後白河) | 1155 ~ 1158 |
13 | 세이무(成務) | 131 ~ 191 | 78 | 니죠(二條) | 1158 ~ 1165 |
14 | 쥬아이(仲哀) | 192 ~ 200 | 79 | 로쿠죠(六條) | 1165 ~ 1168 |
15 | 오진(応神) | 270 ~ 310 | 80 | 다카쿠라(高倉) | 1168 ~ 1180 |
16 | 닌토쿠(仁徳) | 313 ~ 399 | 81 | 안토쿠(安徳) | 1180 ~ 1185 |
17 | 리츄(履中) | 400 ~ 405 | 82 | 고토바(後鳥羽) | 1185 ~ 1198 |
18 | 한제이(反正) | 406 ~ 410 | 83 | 츠치미카도(土御門) | 1198 ~ 121 |
19 | 인교(允恭) | 413 ~ 453 | 84 | 쥰토쿠(順徳) | 1210 ~ 1221 |
20 | 안코(安康) | 454 ~ 456 | 85 | 주코(仲恭) | 1221 |
21 | 유라쿠(雄略) | 456 ~ 479 | 86 | 고호리카와(後堀河) | 1221 ~ 1232 |
22 | 세이네이(清寧) | 480 ~ 484 | 87 | 시죠(四條) | 1232 ~ 1242 |
23 | 겐소(顯宗) | 484 ~ 487 | 88 | 고사가(後嵯峨) | 1242 ~ 1246 |
24 | 닌켄(仁賢) | 488 ~ 498 | 89 | 고부카쿠사(後深草) | 1246 ~ 1260 |
25 | 부레츠(武烈) | 498 ~ 507 | 90 | 가메야마(龜山) | 1260 ~ 1274 |
26 | 게이타이(繼體) | 507 ~ 531 | 91 | 고우다(後宇多) | 1274 ~ 1287 |
27 | 안칸(安閑) | 531 ~ 536 | 92 | 후시미(伏見) | 1287 ~ 1298 |
28 | 센카(宣化) | 536 ~ 539 | 93 | 고후시미(後伏見) | 1298 ~ 1301 |
29 | 긴메이(欽明) | 540 ~ 571 | 94 | 고니죠(後二條) | 1301 ~ 1308 |
30 | 비타츠(敏達) | 572 ~ 585 | 95 | 하나조노(花園) | 1308 ~ 1318 |
31 | 요메이(用明) | 585 ~ 587 | 96 | 고다이고(後醍醐) | 1318 ~ 1339 |
32 | 스슌(崇峻) | 587 ~ 592 | 97 | 고무라카미(後村上) | 1339 ~ 1368 |
33 | 스이코(推古) (섭정)쇼토쿠(聖徳) |
592 ~ 628 (섭정)593 ~ 622 |
98 | 쵸케이(長慶) | 1368 ~ 1383 |
34 | 죠메이(舒明) | 629 ~ 641 | 99 | 고카메야마(後龜山) | 1383 ~ 1392 |
35 | 고쿄쿠(皇極) | 642 ~ 645 | 1[북조] | 코곤(光厳) | 1332 ~ 1334 |
36 | 고토쿠(孝徳) | 645 ~ 654 | 2[북조] | 고묘(光明) | 1336 ~ 1348 |
37 | 사이메이(齊明) | 654 ~ 661 | 3[북조] | 스코(崇光) | 1348 ~ 1351 |
38 | 텐지(天智) | 661 ~ 672 | 4[북조] | 고코곤(後光嚴) | 1352 ~ 1371 |
39 | 고분(弘文) | 672 | 5[북조] | 고엔유(後圓融) | 1371 ~ 1382 |
40 | 텐무(天武) | 672 ~ 686 | 6[북조] 100 |
고코마츠(後小松) | 1382 ~ 1392 1382 ~ 1412 |
41 | 지토(持統) | 690 ~ 697 | 101 | 쇼코(称光) | 1412 ~ 1428 |
42 | 몬무(文武) | 697 ~ 707 | 102 | 고하나조노(後花園) | 1428 ~ 1464 |
43 | 겐메이(元明) | 707 ~ 715 | 103 | 고츠치미카도(後土御門) | 1464 ~ 1500 |
44 | 겐쇼(元正) | 715 ~ 724 | 104 | 고카시와바라(後柏原) | 1500 ~ 1526 |
45 | 쇼무(聖武) | 724 ~ 749 | 105 | 고나라(後奈良) | 1526 ~ 1557 |
46 | 고켄(孝謙) | 749 ~ 758 | 106 | 오기마치(正親町) | 1557 ~ 1586 |
47 | 쥰닌(淳仁) | 758 ~ 764 | 107 | 고요제이(後陽成) | 1586 ~ 1611 |
48 | 쇼토쿠(称徳) | 764 ~ 770 | 108 | 고미즈노오(後水尾) | 1611 ~ 1629 |
49 | 고닌(光仁) | 770 ~ 781 | 109 | 메이쇼(明正) | 1629 ~ 1643 |
50 | 간무(桓武) | 781 ~ 806 | 110 | 고코모(後光明) | 1643 ~ 1654 |
51 | 헤이제이(平城) | 806 ~ 809 | 111 | 고사이(後西) | 1655 ~ 1663 |
52 | 사가(嵯峨) | 809 ~ 823 | 112 | 레이겐(靈元) | 1663 ~ 1687 |
53 | 쥰나(淳和) | 823 ~ 833 | 113 | 히가시야마(東山) | 1687 ~ 1709 |
54 | 닌묘(仁明) | 833 ~ 850 | 114 | 나카미카도(中御門) | 1709 ~ 1735 |
55 | 몬토쿠(文徳) | 850 ~ 858 | 115 | 사쿠라마치(櫻町) | 1735 ~ 1747 |
56 | 세이와(清和) | 858 ~ 876 | 116 | 모모조노(桃園) | 1747 ~ 1762 |
57 | 요제이(陽成) | 876 ~ 884 | 117 | 고사쿠라마치(後櫻町) | 1762 ~ 1771 |
58 | 고코(光孝) | 884 ~ 887 | 118 | 고모모조노(後桃園) | 1771 ~ 1779 |
59 | 우다(宇多) | 887 ~ 897 | 119 | 고카쿠(光格) | 1780 ~ 1817 |
60 | 다이고(醍醐) | 897 ~ 930 | 120 | 닌코(仁孝) | 1817 ~ 1846 |
61 | 스자쿠(朱雀) | 930 ~ 946 | 121 | 고메이(孝明) | 1846 ~ 1867 |
62 | 무라카미(村上) | 946 ~ 967 | 122 | 메이지(明治) | 1867 ~ 1912 |
63 | 레이제이(冷泉) | 967 ~ 969 | 123 | 다이쇼(大正) | 1912 ~ 1926 |
64 | 엔유(圓融) | 969 ~ 984 | 124 | 쇼와(昭和) | (섭정) 1921 ~ 1926 1926 ~ 1989 |
65 | 가잔(花山) | 984 ~ 986 | 125 | 헤이세이(平成) | 1989 ~ ? |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일본의 국왕을 이르는 말.
일본의 신.
천황가의 상징은 국화.
일본어로는 덴노(天皇 - てんのう)로 표기할 수도 있으며 한국에서는 한 층 격을 낮추어 일왕(日王)으로 부르기도 한다.
사실 천황이란 단어는 도교와 관련된 개념도 가지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현대에서 받아들여지는 천황의 의미는 대개 일본의 왕 쪽이다.
천황은 국민들의 총의를 기반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존재이다. 또한 단순히 국가 상징 및 외교적인 위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기능도 함께 겸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의 믿음에 의하면, 일본은 "위대한 태양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가 보낸 천손에 의해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일본은 신국(神國)일 수 밖에 없고, 지금까지도 신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현재도 일본을 다스리는 천황이 곧 신이라는 이야기다.
이와 같은 입장은 일반 국민들의 인식에만 자리하고 있는게 아니라 일본의 정부, 지식의 물을 좀 먹었다는 지식인들, 매사에 비판만 하고 싶어하는 인터넷 유저들의 머릿속에도 들어가 있는 상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일본의 위키백과에만 가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거기서 일본 천황의 계보를 확인해 보면
[계보]
아마테라스오미카미 -> 아메노오시호미미(天忍穂耳尊) -> 니니기노미코토(瓊瓊杵尊) -> 히코호호데미노미코토(彦火火出見尊) -> 히코나기사타게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코토(彦波瀲武盧茲草葺不合尊)
~~ 의 순으로 해서 그 뒷부분에 와서야 드디어 진무(神武) 천황을 표기해놓고 있다.
한 마디로, 천황의 계보의 맨 꼭대기에 신화에나 등장할 법할 신(神), 신의 자식들의 이름을 나열해놓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풀어 말하자면 한반도 왕의 계보 맨 꼭대기에다가 "환인 -> 환웅 -> 단군"을 써놓은 셈이다.
천신의 신화는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니까 의례적으로 표기해놔도 딱히 문제될 것은 없지 않느냐? 라고 묻는다면-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유독 일본의 경우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다르다.
얘네들은 진짜로 신이라고 믿는다. 신처럼 특수한 효험을 가지고 있다고도 믿는 중이고.
이와 같이 신으로부터 내려오는 핏줄이 한 번도 끊기지 않고 125대인 아키히토까지 이어져왔다고 해서 천황가에는 '만세일계(萬世一系)의 혈통'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확실히 신으로부터 내려오는 핏줄이 끊기지 않았다면 일본인들의 신국(神國) 의식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의 핏줄 자체부터가 날조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일본에서 초대 천황이라고 믿어지는 진무 천황은 사실, 실존 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신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것이 바로 이 진무 천황이라는 존재인데 진무가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이라고 한다면 만세일계는 Without Kami 혈통이 되어버리고 만다.
초기에는 일본인들도 이를 부정하기 바빴다.
외국인 : 야. 니네 사실 진무 있다는거 뻥이지 ^ㅅ^
일본인 : 있어 시발! ( `Д´ )
하지만 시발 없는건 없는거다. 생몰연도도 알 수 없고 진무 천황릉으로 추정되는 곳도 사실은 그닥 관계 없는 곳이다. 원래 일본의 학자들도 신성시되는 부분은 터부의 영역이라고 해서 안 건드리려고 했었지만,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은 점점 신화를 부정하기 마련이다.
이 같은 신국 의식이 튀어나오게 된 계기는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의해서이다.
진무 천황도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더 확실하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되는 천황들도 있다. 바로 2대부터 9대까지다. 이들의 계보는 오로지 고사기와 일본서기에서만 나타난다. 도저히 신뢰할 수가 없다. 이 8명의 천황들은 결사팔대(決史八代)라고 불리우며 없는 사람 취급을 해주는게 통설이다.
물론 이 같은 책들이 나오기 전에도 신화들은 여러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으나, 이를 모아서 고도로 체계화시키고 정치화시킨건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한 행위였다.
특히 개구라 같은 부분에다 묘하게 현실성을 섞어냄으로서 자국민들에게 현실감을 어필해냈고. 심지어는 전혀 신화가 안 먹힐 것 같은 시대에 들어와서까지도 신화를 자주 이용해먹음으로서 자신들의 행동에 정통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메이지 유신과 한반도 침략이다.
천황가에도 암흑기는 있었다. 무사들이 득세하고 막부가 시작하면서 천황은 권력을 다 뺏기고 화려한 병풍으로 전락했었다 카더라. 깔깔깔. 아니 뭐야? 암흑기가 존나 길어서 빛이 비추던 시기를 잘 찾아볼 수가 없는걸?
그러나 찐따 병풍에 불과했던 천황도 어느 시점부터는 위상이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바로 페리 제독의 흑선 사건이다. 사실 대정봉환이 이루어지고 천황이 전면에 나서기 전까지는, 일반의 백성들은 천황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근대화의 바람이 일본 열도를 한창 조져놓자 일본 대통합의 상징으로 천황이 나서게 되었다.
천황은 전국을 순회하면서 백성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이 때 천황이 머무른 자리는 효험이 있는 곳으로 간주되었고 그 집에는 인간들이 존나게 몰려왔다고 한다. 천황이 손을 씻거나 물을 마신 우물은 신성한 우물이 되었다. ㅂㅅ.....
물론 그런 미개한 현상이 일어난건 천황측에서 의도한 바였다.
일본 특유의 종교인 신도가 국교화 되고 천황은 일본에서 절대적인 신으로 군림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 때의 잔재가 지금도 남아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가미카제 같이 미친 프로젝트가 어찌저찌 수행되었던 것도 천황을 향한 미친 충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함에 따라 천황은
"난 인간입니다. 데헷☆"
이라고 인간선언을 해버렸다. 그는 더 이상 신이 아닌 인간으로 신분이 하락했고, 절대 군주가 아닌 상징 천황으로 남게 되었다.
근데 시발 히로히토가 전후 일본에서 많은 국민들과 함께 동고동락 하면서 피해 복구에 힘을 기울이고, 경제 성장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국민의 천황]의 이미지를 심어줌에 따라- 일본은 천황에 대한 호감도가 전혀 바닥을 치지 않았다고 한다.
황태자도 평민 여자랑 결혼을 함으로 일본 열도에 황족 로맨스의 이미지를 심어줬다. 덕분에 당시 일본 황태자 부부는 전국민적인 아이돌로 부상했었다고.
현재 천황의 위치[편집 | 원본 편집]
여전히 절대적이다.
천황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놈은 비국민으로 낙인 찍히게 된다. 특히 정치인이라면 절대 천황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정치 인생 마감하기 싫으면.
천황에게 전쟁의 책임이 있다고 발언했던 인간은 목숨을 위협받았다. 일본의 상징인 천황이 전쟁의 책임을 짊어지지 않는다는건 곧 일본에 전쟁의 책임이 없다는 이야기다. 일본놈들의 발상에 따르면 전쟁의 책임은 어디의 누구에게도 없고, 단지 처참한 전쟁에 의한 피해자들만 남아있을 뿐이란다.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아키히토가 새로 천황에 즉위할 때의 일이다.
천황은 위쪽에 서있었고, 그 아래쪽에는 일본 총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천황을 위한 만세를 외치며 즉위식을 축하했다. 국민에게 권력을 양도 받은 정치 권력의 상징이 천황보다 아래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민주주의가 먼저냐 상징적인 총의가 먼저냐? 아마 일본인들은 주저없이 후자를 택할게 틀림없다.
실제로 이에 반발한 일부 사람들이 소송을 걸었지만 기각돼버렸거든.
쇼와 천황이 중병에 걸렸을 때도 일본 전국에서는 온갖 행사와 축제를 전부 취소해버렸을 뿐더러, 천황의 회복을 기원하며 궁을 향해 우루루루 몰려들기까지 했다. 일본과는 달리 외국에서는 어, 시발 빨리 뒤져라 악마 새끼! 하는 반응이 대다수였지만.
불쌍함[편집 | 원본 편집]
하지만 사생활 면에서는 불쌍하다.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꼭두각시 같은 존재로 기능한다. 상징 천황이라서 그래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