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큰숲백과, 나무를 보지 말고 큰 숲을 보라.

환단고기》(桓檀古記)는 대한민국이유립(李裕岦)이 1979년에 출간한 책으로 순한문 역사서 형식으로 가장한 위서(僞書)다. 가끔씩 농담삼아 황당한 맛이 나는 고기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유사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감춰진 역사를 밝힌 책이라 주장되고 있으나, 현재 대한민국북한의 역사학계는 위서로 판정하여 역사서로 인정하지 않는다. 즉 환(桓)타지 소설이라는 것이다.

임승국(林承國)이 환단고기를 한단고기라고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빠들은 임승국의 주장에 동조를 하지만, 이 주장은 근거가 없다. 애초에 책 자체가 근거 따윈 없는 책이니 근거 없는 주장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증산도라는 사이비종교에서

역사를 물타기위해 퍼뜨리는 위서 ㅡ환단고기

설명[편집 | 원본 편집]

왜 거짓인가?[편집 | 원본 편집]

이유립이 자신이 실제로 보고 들은 역사서의 내용들을 그대로 담아 적었다는 주장과 함께 발표되었는데, 문제는 그 이유립이 보고 들었다던 역사서들이 과연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당장에 위키백과 정도의 매체만 하더라도 출처를 요구하는 마당에 진실된 역사서를 자칭하는 책이 출처가 없다. 한마디로 이 책의 내용은 근거라는 게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역사서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만을 적어야지 거짓된 내용을 적으면 역사서로서의 가치가 없다. 거짓말만 담겨 있는 책을 누가 지식이라 하겠는가. 유머 목적으로 만든거면 몰라도.

물론 따지고 보면 역사서가 이런 딜레마에 빠질 수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현대에도 유명한 사건사고로 기록될만큼 커다란 사건들(예: 임진왜란, 조선왕조 건립 등)은 당시 그것을 기록한 사람이 여러 명인 경우가 많아 그 모든 사료들을 동시에 검증하여 사실 여부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이른바 교차검증이라는 것이 가능해서 조작 여부를 줄일 수 있다. 현대사회의 일상도 마찬가지로 누군가 마트에서 호박을 하나 사갔다면 마트는 자체 장부에 호박을 어디의 누구에게 얼마에 팔았다고 기록을 남기고 그것을 고객에게 영수증으로 끊어준다. 이렇게 함으로서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예: 고객이 호박의 신선도를 문제삼아 환불을 요구할 때) 고객의 영수증과 자체 장부를 교차검증하여 이 고객이 정말로 이 마트에서 호박을 얼마에 사간 건지(어쩌면 집에서 기른 호박을 마트에서 사간 거라고 뻥칠 수도 있다)를 확인하는 식으로 어떠한 사기도 성립될 수 없도록 확실시할 수 있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바로 그렇게 비교할 사료라는 것이 전혀 없다. 《환단고기》에 적혀 있다는 '한민족의 참된 역사'라는 것은 오직 《환단고기》 단 한 권에만 적혀 있으며 다른 누군가가 적은 똑같은 기록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환단고기》에 나온대로 한민족이 어디어디를 공격하여 점령했다면 보통은 침략자인 한민족이 남긴 기록이 있을 것이고 또한 피침략자인 피지배민족이 남긴 기록, 그리고 제3자가 남긴 기록 등 여러 기록이 존재해야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환단고기》에 적힌 내용과 동일한 내용을 서술한 비교자료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즉, 《환단고기》현재로서는 위서일 뿐이다. 칼 포퍼가 말하듯이 반증이 불가능한 주장은 의미가 없는 주장이다.

물론, 관련 자료가 소실되어서 그랬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환단고기》에 기록된 한민족의 역사는 수천 년 전부터 다루고 있는데, 수천 년 동안 나고 자란 인류의 수가 얼만데 그중에 꼴랑 단 한 명만이 역사서를 썼다고 해도 수천 년 분량이면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 《환단고기》와 일치하는 사료가 설마 단 한 개도 없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정말로 단 한 개도 없다.

여기에 대해 추종자들은 '한민족을 시기한 다른 민족들이 조직적으로 다른 역사서들을 모조리 폐기하고 조작하였다!'라는 음모론을 치는데,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렇게 했다는 증거는 또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더불어 그렇게 기록을 조직적으로 말살시켰을 정도로 다른 민족들이 한민족을 미워했다면 오히려 한민족이 멸종 당하지 않은 게 더 신기할 따름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미운 놈이 있다면 한 대 때리고 보지 그 사람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기록을 먼저 제거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당장 백인들이 아메리카에 건너가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기록을 말소했는지 아메리카 원주민을 말소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답 나온다.

게다가 첨단기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도 모든 기록을 100% 깔끔하게 삭제하는 건 불가능한데 하물며 고대 사회에서 기록을 100% 삭제하는 건 더더욱 어림도 없다. 시황제가 벌인 분서갱유 사건만 해도 당대 최고 권력가인 황제의 어명으로 그렇게 책을 제거해댔으나 그 시대 책들 일부는 기어이 살아남아 오늘날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겨우' 천여 년 전 문서들도 이렇게 잘 살아 있는데, 어째서 수천년이나 된 '한민족의 참역사'라는 것을 다룬, 《환단고기》의 진위성을 입증시켜줄 문서는 단 한 개도 없는 걸까?

더군다나, 교차검증이 되는 것도 사실상 부정해버릴 수 있는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유적'과 '유물'[1]이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이거 한 방에 뭐든지 검증이 되기도 한다.[2] 그런데 이런 것도 당연히 뒷받침 되지 않는다.판타지 소설에 무슨 물적 증거가 있어

이렇게 여러모로 진서라고 볼 수 없는 부실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철저하게 위서로 취급되고 있다.

왜 신봉되는가?[편집 | 원본 편집]

그럼에도 《환단고기》는 많은 신봉자들이 존재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한국인들이 부당하게 일본제국한테 착취와 억압을 당했는데 이 때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 생긴 식민사관에 대항하기 위해 민족사관이 생겼는데 이 민족사관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다. 그래서 환단고기는 민족사관에 영향을 받아 민족주의를 지나치게 주입했고 이에 따른 결과물이다.[3]

또 한국에서는 강대국과 비교하면서 심각한 열등감을 갖고 있었는데 스스로를 나약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 사람들은 반드시 선진국이 되어야만 한다는 이른바 선진국 콤플렉스에 시달려왔는데 이에 따라 경제 민족주의(Economic nationalism)이 생기기도 했다.[4]

이러다 보니 자신들의 처지가 너무 비참하다고 느낀 한국 사회는, 괴로우면 술을 마시는 것처럼 콤플렉스를 잊게 해줄 무언가에 갈구하게 된 것이다.

《환단고기》는 이러한 사람들의 컴플렉스를 자극, 신봉자들에게 그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자신감으로 가득하게 만들어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그 자신감이 가득 찬 사람은 《환단고기》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심을 갖게 되며, 《환단고기》를 타인들에게도 전파하는 단계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아두자. 조상이 얼마나 대단했든 그건 과거일 뿐이고 그게 당장 우리에게 밥을 먹여주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재이자 앞으로 만들어나갈 미래이지 과거의 일들을 참고서 수준 이상으로 생각하여 거기에 얽매이면 현실도 미래도 없다. 지금 당장 친인척 중에 연예인이 있다고 나도 연예인인 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사실, 《환단고기》의 확장에는 정부도 한 몫 한 바가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이런식으로 국민들에게 패배의식을 심어주어서, "보아라. 우리는 한 때 찬란했지만 지금은 엄청 못난 놈들이다. 그러니 내가 책임지고 우리 모두에게 과거의 영광을 돌려줄테니 나만 믿고 따르라!"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할 목적으로 이런 민족주의를 밀어준 역사가 있다. 참고로 같은 짓을 북한도 했었다(이 쪽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구성[편집 | 원본 편집]

  • 범례(凡例)
  • 삼성기(三聖紀) 상 - 안함로(安含老) 지음.
  • 삼성기(三聖紀) 하 - 원동중(元董仲) 지음.
  • 단군세기(檀君世紀) - 이암(李嵒) 지음.
    • 단군세기서(檀君世紀序)
    • 단군세기
  • 북부여기(北夫餘紀) - 북애거사 범장(伏崖居士 范樟) 지음.
    • 북부여기(北夫餘紀) 상
    • 북부여기(北夫餘紀) 하
    • 가섭원부여기(迦葉原夫餘紀)
  • 태백일사(太白逸史) -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 지음.
    • 태백일사목록(太白逸史目錄)
    •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
    • 환국본기(桓國本紀)
    • 신시본기(神市本紀)
    •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 삼한관경본기제사(三韓管境本紀)
      • 마한세가(馬韓世家) 상
      • 마한세가(馬韓世家) 하
      • 번한세가(番韓世家) 상
      • 번한세가(番韓世家) 하
    •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 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
    • 고려국본기(高麗國本紀)
    • 태백일사발(太白逸史跋)
  • 환단고기발(桓壇古記跋)

내용[편집 | 원본 편집]

《환단고기》는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의 각기 다른 시대에 쓰여졌다고 설정한 이유립이 5권(4종류)의 책을 엮은 것다고 주장한다. 간단하게 내용을 설명하자면, 여기에 등장하는 환국은 정복활동을 하기는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영토를 자비롭게 떼 주는 호구 나라다.

삼성기[편집 | 원본 편집]

삼성기는 고조선 이전에 환국배달국이 존재하였다고 주장한다. 두 나라는 환인환웅이 통치하였으며, 각각 7대와 18대를 전한다고 주장 한다.

환국[편집 | 원본 편집]

건국[편집 | 원본 편집]

《환단고기》에는 환인은 사백력(시베리아)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하여 신이 되고 이 환인과 함께 하늘로부터 어린 남녀 800명이 천해의 동쪽 땅인 흑수(黑水)와 백산(白山)의 땅에 내려와 건국하였다고 한다. 유사역사학자 임승국은 사백력을 시베리아로, 천해는 바이칼 호라고 주장했다.[5].

12연방[편집 | 원본 편집]

환국은 12개의 나라로 구성된 유목문화를 바탕으로 한 연방국가이며 각각의 비리국(卑離國),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寇莫汗國), 구다천국(句茶川國), 일군국(一群國), 우루국(虞婁國) 또는 필나국(畢那國), 객현한국(客賢汗國), 구모액국(句牟額國), 매구여국(賣句餘國) 또는 직구다국(稷臼多國), 사납아국(斯納阿國), 선비국(鮮裨國) 이다. 그 영토가 매우 넓어 남북이 5만 리요 동서가 2만여 리였다고 주장한다.[6]

역대 환인[편집 | 원본 편집]

《환단고기》에 따르면 환국의 존속기간은 3,301년, 혹은 63,182년 동안 왕이 7대라고 한다. 《환단고기》에 기록된 환인은 다음과 같다.

  • 1대 환인: 안파견(安巴堅)
  • 2대 환인: 혁서(赫胥)
  • 3대 환인: 고시리(古是利)
  • 4대 환인: 주우양(朱于襄)
  • 5대 환인: 석제임(釋提壬)
  • 6대 환인: 구을리(邱乙利)
  • 7대 환인: 지위리(智爲利) 또는 단인(檀仁)[7]

신시배달국[편집 | 원본 편집]

삼성기의 『신시역대기』와 『태백일사 신시본기』에서는 신시 배달국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단군이 세운 고조선 이전의 만주한반도를 중심으로 자리잡았던 한민족의 고대국가라고 이유립은 주장한다. 환웅이 다스린 국가로 18대 1565년을 다스렸다고 주장하고,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치우 또한 중국집배달부의 왕국국의 한 임금으로 기록되어 있다.

  • 1대 환웅 : 거발한(居發桓), 재위 94년, 120세
  • 2대 환웅 : 거불리(居佛理), 재위 86년, 102세
  • 3대 환웅 : 우야고(右耶古), 재위 99년, 135세
  • 4대 환웅 : 모사라(慕士羅), 재위 107년, 129세
  • 5대 환웅 : 태우의(太虞儀), 재위 93년, 115세
  • 6대 환웅 : 다의발(多儀發), 재위 98년, 110세
  • 7대 환웅 : 거련(居連), 재위 81년, 140세
  • 8대 환웅 : 안부련(安夫連), 재위 73년, 94세
  • 9대 환웅 : 양운(養雲), 재위 93년, 139세
  • 10대 환웅 : 갈고(葛古) 또는 독로한 재위 100년, 125세
  • 11대 환웅 : 거야발(居耶發), 재위 92년, 149세
  • 12대 환웅 : 주무신(州武愼), 재위 105년, 123세
  • 13대 환웅 : 사와라(斯瓦羅), 재위 67년, 100세
  • 14대 환웅 : 자오지(慈烏支), 치우천왕이라고도 하며, 청구국으로 도읍을 옮겨서 재위 109년, 151세
  • 15대 환웅 : 치액특(蚩額特), 재위 89년, 118세
  • 16대 환웅 : 축다리(祝多利), 재위 56년, 99세
  • 17대 환웅 : 혁다세(赫多世), 재위 72년, 97세
  • 18대 환웅 : 거불단(居弗壇) 혹은 단웅(壇雄), 재위 48년, 82세

제5대 환웅인 태우의 환웅의 열두 아들 중 막내가 태호 복희이며, 그의 후손이 현재의 산시 성(山西省, 산서성)에 살았다고 이유립은 주장한다.《환단고기》에서는 태호 복희씨팔괘의 시초임을 이유립은 주장한다.

단군세기[편집 | 원본 편집]

단군세기는 이유립이 단군의 치세에 대해 자세히 설정하였고, 그 역년은 다음과 같이 설정하였다.

  1. 왕검(王儉)단군: 재위 93년
  2. 부루(扶婁)단군: 재위 58년
  3. 가륵(嘉勒)단군: 재위 45년
  4. 오사구(烏斯丘)단군: 재위 38년
  5. 구을(丘乙)단군: 재위 16년
  6. 달문(達文)단군: 재위 36년
  7. 한율(翰栗)단군: 재위 54년
  8. 우서한(于西翰) 혹은 오사함(烏舍咸)단군: 재위 8년
  9. 아술(阿述)단군: 재위 35년
  10. 노을(魯乙)단군: 재위 59년
  11. 도해(道奚)단군: 재위 57년
  12. 아한(阿漢)단군: 재위 52년
  13. 흘달(屹達) 혹은 대음달(代音達)단군: 재위 61년
  14. 고불(古弗)단군: 재위 60년
  15. 대음(代音) 혹은 후흘달(後屹達)단군: 재위 51년
  16. 위나(尉那)단군: 재위 58년
  17. 여을(余乙)단군: 재위 68년
  18. 동엄(冬奄)단군: 재위 49년
  19. 구모소(緱牟蘇)단군: 재위 55년
  20. 고홀(固忽)단군: 재위 43년
  21. 소태(蘇台)단군: 재위 52년
  22. 색불루(索弗婁)단군: 재위 48년
  23. 아홀(阿忽)단군: 재위 76년
  24. 연나(延那)단군: 재위 11년
  25. 솔나(率那)단군: 재위 88년
  26. 추로(鄒盧)단군: 재위 65년
  27. 두밀(豆密)단군: 재위 26년
  28. 해모(奚牟)단군: 재위 28년
  29. 마휴(摩休)단군: 재위 34년
  30. 나휴(奈休)단군: 재위 35년
  31. 등올(登兀)단군: 재위 25년
  32. 추밀(鄒密)단군: 재위 30년
  33. 감물(甘勿)단군: 재위 24년
  34. 오루문(奧婁門)단군: 재위 23년
  35. 사벌(沙伐)단군: 재위 68년
  36. 매륵(買勒)단군: 재위 58년
  37. 마물(麻勿)단군: 재위 56년
  38. 다물(多勿)단군: 재위 45년
  39. 두홀(豆忽)단군: 재위 36년
  40. 달음(達音)단군: 재위 18년
  41. 음차(音次)단군: 재위 20년
  42. 을우지(乙于支)단군: 재위 10년
  43. 물리(勿理)단군: 재위 36년
  44. 구물(丘勿)단군: 재위 29년
  45. 여루(余婁)단군: 재위 55년
  46. 보을(普乙)단군: 재위 46년
  47. 고열가(古列加)단군: 재위 58년
  • 치세 기간은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238년으로, 47대 2096년간 비정상적인 재위기간을 설정하였다.

북부여기[편집 | 원본 편집]

  • 1대 국왕: 해모수(解慕漱)
  • 2대 국왕: 모수리(慕漱離)
  • 3대 국왕: 고해사(高奚斯)
  • 4대 국왕: 고우루(高于婁)
  • 5대 국왕: 고두막(高豆莫)
  • 6대 국왕: 고무서(高無胥)

태백일사[편집 | 원본 편집]

삼신오제본기[편집 | 원본 편집]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한국 고유의 신앙과 구환(九桓)의 풍속 등을 이유립이 조작한 풍습을 서술하고 있다.

삼한관경본기[편집 | 원본 편집]

마한변한의 역사를 적고 있다. 역대 마한, 변한의 군주가 등장한다.

소도경전본훈[편집 | 원본 편집]

단군 시대의 신교(神敎)를 설명하고 있다. 삼일신고와 인류최초의 경전인 천부경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고구려국본기[편집 | 원본 편집]

일부 전해지지 않는 여러 서적의 인용문이라고 쓰고 소설책이라고 읽는 고구려의 역사를 서술하였다.

대진국본기[편집 | 원본 편집]

발해의 역사와 함께 이유립이 사시(私諡)를 내려준 역대 군주의 묘호와 시호, 연호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1. 대중상: 세조(世祖) 진국열황제(振國烈皇帝), 연호 중광(重光)
  2. 고왕: 태조(太祖) 성무고황제(聖武高皇帝), 연호 천통(天統)
  3. 무왕: 광종(光宗) 무황제(武皇帝), 연호 인안(仁安)
  4. 문왕: 세종(世宗) 광성문황제(光聖文皇帝), 연호 대흥(大興)
  5. 대원의: 폐위되어 묘호와 시호 없음. 재위 당시 사용한 연호는 기록 없음
  6. 성왕: 인종(仁宗) 성황제(成皇帝), 연호 중흥(中興), 휘 화흥(華興)
  7. 강왕: 목종(穆宗) 강황제(康皇帝), 연호 정력(正曆)
  8. 정왕: 의종(毅宗) 정황제(定皇帝), 연호 영덕(永德)
  9. 희왕: 강종(康宗) 희황제(僖皇帝), 연호 주작(朱雀)
  10. 간왕: 철종(哲宗) 간황제(簡皇帝), 연호 태시(太始)
  11. 선왕: 성종(聖宗) 선황제(宣皇帝), 연호 건흥(建興)
  12. 대이진: 장종(莊宗) 화황제(和皇帝), 연호 함화(咸和)
  13. 대건황: 순종(順宗) 안황제(安皇帝), 연호 대정(大定)
  14. 경왕: 명종(明宗) 경황제(景皇帝), 연호 천복(天福)
  15. 애왕: 묘호 없음. 애제(哀帝), 연호 청태(淸泰)

대위해는 《환단고기》에서 황제로 기록하지 않았고 당시에 사용된 연호도 기록하지 않았다. 이는 이유립이 《환단고기》가 지을 당시에 대위해는 중국학자 김육불에 의해서 1940년에야 발해의 국왕이었다는 사실을 중국인 학자가 조작했다고 생각하여 무시하거나, 아니면 대위해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로 추정할 수 있다.

『대진국본기』에서는 대진국이라는 명칭만 사용되며 발해로 국호를 바꾸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이에 대해 《환단고기》를 이중 번역으로 주해한 임승국(林承國)은 발해라는 이름은 외부에서 부르는 이름이었지 발해인 스스로가 부른 국호는 대진국일 것으로 주장하였다.

고려국본기[편집 | 원본 편집]

고려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전파[편집 | 원본 편집]

2012년 경부터 뜬금없이 증산도[8]가 《환단고기》를 보급하고 있다.

같이 보기[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특히 금석문(金石文). 칠지도 명문 하나의 해석이 임나일본부설을 얼마나 먹여살리고 있는지를 봐도 알 수 있다. 광개토대왕릉비 건도 그렇고.
  2. 비슷한 맥락에서 보자면, 기자조선설은 교차검증은 비교적 잘 되지만 결정적인 당대의 물적 증거가 전혀 제시가 되지 않기 때문에 결정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또한 기자조선설과는 조금 다르지만 《화랑세기》 역시 금석문과 일치하는 것들이 없어 거의 위서로 확정되는 분위기다.
  3. 오죽하면 역사학자 임지현이 민족주의 관점을 버리라고 했을 정도다.
  4. 그러나 실제로 경제 성장에만 집착한 탓에 현재는 홀로 미칠 듯이 발달한 경제 사정을 따라잡지 못한 후진적인 사회적, 문화적 문제들이 여러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5. 임승국 주해, 《한단고기》, 정신세계사, 1986년
  6. 그런데 이 점이 또 말이 안 되는 것이 당시에(환국 시절) '리'라는 단위가 있었다는 것과 남북 5만 리에 동서 2만 리인 북극에서 남극까지 다스렸다는 점이다. 만에 하나 필사가 잘못되어 남북 2만 리에 동서 5만 리라고 해도 유라시아를 다스리는 꼴이니 여전히 말이 되지 않는다.
  7. 대체로 단인은 환인과 똑같이 본다.
  8. 증산도의 경전들 중에서 《환단고기》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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