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호란: 두 판 사이의 차이
보이기
큰숲백과>Han1011 위에 편집요약의 ㅈ은 오타입니다. 편집은 리다이렉트 추가 |
|||
| 20번째 줄: | 20번째 줄: | ||
결국 조선은 [[척화론]]이 대두되고, 관계는 거의 아슬아슬해졌다. 그러다가 [[병자호란]]으로 아예 [[군신관계]]로 전락하고 만다. | 결국 조선은 [[척화론]]이 대두되고, 관계는 거의 아슬아슬해졌다. 그러다가 [[병자호란]]으로 아예 [[군신관계]]로 전락하고 만다. | ||
[[분류:한국사]] | |||
2024년 3월 22일 (금) 17:39 기준 최신판
1627년 정묘년 후금[1]이 조선을 침공해 일어난 전쟁이다.
원인은 조선의 친명사상이다. 조선은 성리학에 입각해 쇠약해져가는 명나라를 따르고 강성해지는 청나라를 무시했었다.
심지어 광해군은 강홍립 사건등으로 중립 외교를 했으나 그것을 명분으로 쫓아내기도 하였다.
또 후금이 명나라와 싸울 때 후방 안정에도 목적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1627년 홍타이지는 광해군을 보복한다는 구실을 내세우고 군사 3만 명으로 조선을 침입했다.
후금군의 일부는 명나라의 모문룡을 치고, 주력 부대 3만 명은 의주 -> 정주성 -> 안주성 -> 평양성순으로 진격하였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난하였다. 정봉수와 이립의 의병이 후금을 이기자, 후금은 화친을 제의하였다. 1627년 조선과 후금 사이에 화친이 성립되었다. 이 화친으로 조선은 후금과 형제 관계가 되었다.
후금은 무리한 요구와 압박으로 조선에게 부담을 주었다.
결국 조선은 척화론이 대두되고, 관계는 거의 아슬아슬해졌다. 그러다가 병자호란으로 아예 군신관계로 전락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