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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숲:Sudo위키/신중현

큰숲백과, 나무를 보지 말고 큰 숲을 보라.

파일:신중현.jpg

신중현 (申重鉉)
1938.11.4. ~

개요

신중현은 한국 대중음악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입니다. 실험적인 음악을 시도하면서 순수한 가사를 썼었기에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간 아티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신중현의 실험적인 음악들은 외국에도 많이 알려졌고, 그의 앨범들을 미국의 음반사가 재발매하기도 했습니다. 1960년대에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록 음악을 들여와 한국적으로 재해석했기 때문에 1960 ~ 1970년대에 신중현이 만든 곡들은 정말 한국적인 록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실험적인 곡들을 만드는 것 이외에도 펄 시스터즈, 김추자, 김정미, 장현, 박인수 등의 가수들에게 많은 곡들을 써주었습니다. 이 곡들로 신중현씨의 이름이 더 유명하게 되었지만 신중현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시도들을 하면서 '신중현과 엽전들', '신중현과 뮤직파워', '신중현과 세 나그네' 등의 밴드를 결성해서 활동했습니다.

생애

탄생

신중현은 1938년 서울 명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주 어릴 때 집안이 만주로 이사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이발사였고 어머니는 미용사였습니다. 신중현이 8살이던 1945년, 광복이 찾아왔지만 중국인과 소련군들이 만주 지역 사람들의 재산을 약탈하자 신중현의 가족은 서울로 피난했습니다.

히키-신

에드훠 (Add4)

펄 시스터즈

김추자

김정미

신중현과 덩키스

신중현과 퀘션스

신중현과 엽전들

1974년 '신중현과 엽전들'이 결성되었습니다. 신중현과 엽전들은 처음에 5인조 (신중현, 이남이, 최이철, 문영배, 김기표) 의 라인 업으로 구성되었으나 이후 기타에 신중현, 베이스이남이, 드럼김호식의 3인조로 변경되었습니다. 1집 발표 이후애는 드럼 파트가 권용남으로 교체되었습니다.

1974년 8월에 1집을 발표했는데, 이 앨범에는 「미인」, 「생각해」, 「그 누가 있었나봐」, 「저 여인」, 「할 말도 없지만」, 「나는 몰라」, 「떠오르는 태양」 등의 명곡들이 실렸습니다. 신중현과 엽전들은 1집을 발표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지만 1집 수록곡 10곡 중 7곡이 방송금지 처분을 당했습니다. 당시엔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가 유행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풍자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미인>의 가사를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자꾸만 하고 싶네'로 바꿔 부르던 것이 금지곡이 된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1975년 10월에 발표된 신중현과 엽전들 2집은 군가와 행진곡같은 분위기의 곡들이 대부분이고 앨범 커버도 멤버들이 정장을 입고 바른 자세로 서있는 사진이 사용되었습니다. 뒷면에는 마치 시위를 하듯이 바닥에 앉아 있는 멤버들의 사진이 있습니다. 이남이씨의 회고에 따르면 일부러 의도적으로 순종하는 척 하면서 반항의 메시지를 담았었다고 합니다.

2집 발표 후 신중현과 권용남이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되면서 신중현과 엽전들은 해체되었습니다.

신중현과 뮤직파워

신중현과 세 나그네

김삿갓

곡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