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은 1929년부터 1938년까지 전 세계 경제 체계의 규모가 대규모로 후퇴한 사건을 말한다. 1929년 10월 24일부터 29일까지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발표된 기록적인 주가 대폭락과 함께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서민 생활상이 붕괴하는 등 빈곤 계층이 늘어났었다. 대공황은 공식적으로는 1938년에 끝났는데, 이때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란 신호가 된 안슐루스(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 사건)가 발생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일단 대공황이 발생한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학자들마다 지목하는 원인이 다르고, 아직까지도 통일된 합의가 도출된 적이 없다.
발생 원인을 지목하기 어려운 첫째 이유로, 데이터의 부족을 들 수 있다. 당시에는 거시경제학이 막 정립된 시기였기 때문에, 거시경제학의 대부로 불린 존 매이너드 케인즈가 대공황을 타개하려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조언을 했을 정도로 전 세계적 불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할 이론적 근거 자체가 부족했고, 이에 따라 당대에 수집된 데이터가 적다보니 현대에도 분석이 어려운 것.
둘째, 데이터를 수집한답시고 당시에 이런 저런 사회 실험을 경제학자들이 정치인들을 설득하여 시행하기엔 국가 경제와 국력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학자들이 섣불리 나서기 어려웠던 점이 꼽힌다. 이는 현대에도 다르지 않아서 경제학자들마다 행정가들에게 국가 경제 전반에 대한 조언이 엇갈리고 성장과 자원 분배 등 경제 정책에 대한 토론에서 만장일치의 합의가 나오는 경우가 적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학계까지 영향을 받는 이상 현 사회체계보다 더 나은 자본주의의 대체 경제 체계를 개발하기 어려운 것. 뉴딜 정책조차 케인즈의 탄탄한 이론가로서의 명성에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정치적 인기와 결단이 더해졌기에 시행될 수 있었고, 그마저도 2%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나서야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괜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대공황은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라는 주장을 함에도 선뜻 거드는 주류 학계의 학자들이 없는 이유가 있다.
그나마 유력한 원인으로는 실물 시장 대비 지나치게 과열된 자산시장의 붕괴를 꼽거나[1], 보호무역주의의 과열 및 유동성 저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발생한 마르크화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영향이 세계 무역에 전염된 것 등이 꼽힌다.
-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의 총 시가총액이 9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되면서 기업의 줄도산과 일자리의 급격한 축소로 인한 실업자의 급증 문제가 발생헀다. 물가 역시 요동치면서 고급 요리에서 미트로프로, 미트로프에서 수프와 도넛으로 식생활의 질이 저하되었고, 국민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결국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물러나고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등장하여 뉴딜 정책을 시작하면서 경제가 상당히 복구되었고, 이후 뉴딜 정책이 이런 저런 풍파에 시달리면서 효과가 시드는 것 같았으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모든 미국인들이 노동 현장에 투입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미국은 대공황을 완전히 극복하고 초강대국의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 영국: 미국과 달리 식민지가 풍부했던 영국은 미국과 유럽에서 돈을 빼냈는데도 여전히 재정 부족에 시달리자 식민지를 착취하는 것으로 극복하려고 하였다. 이는 식민지 지역의 반발을 불러왔고, 그럼에도 국방력 약화 등의 문제를 겪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얻어맞고 전후 대규모 식민지 독립을 겪으며 대영제국이라는 타이틀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몰락하게 된다.
- 프랑스: 역시 치명적 타격을 입었고, 뒤이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에게 탈탈 털리면서 영국처럼 몰락했다.
- 독일: 안 그래도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던 바이마르 공화국은 대공황으로 완전히 경제가 작살나면서 국민들이 정권에 실망하게 되고 그 기회를 틈타 나치가 성장하게 된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제1차 세계대전의 배상금을 갚을 수 있다고 증명한답시고 마르크화를 마구 찍어내는 바람에 발생한 하이퍼인플레이션 역시 대공황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 때문에 어쩌면 독일이 대공황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나라일 수도 있다.
- 소련: 대공황을 유일하게 비껴나가다시피한 유럽 국가. 당시 공산주의 이론에 따라 소련 전역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외부 경제와의 연결고리를 상당수 끊고 자력갱생을 시도하였는데, 마침 대공황이 터지며 다른 나라들이 주저앉을 때 상대적으로 나은 경제 상황을 보여주었고, 미국에서까지 이민을 받아올 정도로 높은 경제 성장을 보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을 상대하는 유일한 국가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우크라이나 대기근 같은 체제 내의 경제적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완벽한 대안을 보여주지는 못했으며, 독소전쟁의 피해와 대숙청의 악영향이 컸기에 전후에는 초강대국 타이틀을 쥐었음에도 성장이 정체되게 된다.
- 일본: 역시 영향이 없을 리가 없다. 대공황에 더해 관동 대지진 등 물적 피해를 꽤 입은 일본 내에서는 점차 전쟁경제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군부를 중심으로 나오기 시작하였고, 결국 온건파가 물러나고 만주국 건립을 통한 착취와 물자 수탈을 식민지에서 시행하게 된다. 당연히 당시 식민지였던 한반도도 쌀을 대규모로 빼앗기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일본 제국이 나치 독일처럼 태평양 전쟁을 일으킴에 따라 대공황은 일본 역시 극단주의에 빠지게 한 결과를 낳았다.
- ↑ 2008년을 뒤흔들었던 미국 부동산 시장 붕괴발 대침체와 유사하다. 당시 연방준비제도(FDR)의 의장이 대공황만 전문으로 연구했던 벤 버냉키였기에 대공황과 달리 미국 내에서는 불황을 비교적 신속하게 진압했다는 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