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미디어위키 1.45 안정화가 거의 끝났습니다. 다만 Flow 확장 기능 관련 이슈가 있어서 대체하는 작업을 수행할 계획입니다.

  1. 큰숲백과:청사진에서 위키 발전의 대략적인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의견이 있으신 분은 큰숲백과토론:청사진에서 의견을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2. 기능상의 오류로 지원하지 않고 있는 기능에 대해서는 큰숲백과토론:이슈 트래커에 요약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3. 데이터베이스 덤프 받고싶으신 분은 큰숲백과 가입 후에 사용자토론:Bigforest에 의견 남겨주시면 ftp 주소, 계정, 비밀번호를 특수:EmailUser를 통해서 공개할 예정입니다.

작은숲:Sudo위키/창덕궁

큰숲백과, 나무를 보지 말고 큰 숲을 보라.

창덕궁 (昌德宮) 은 1405년에 태종이 세운 조선 왕조 제 2의 궁궐입니다.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개요

창덕궁은 법궁인 경복궁에 이어 별궁으로 지어졌지만, 이후 왕들이 창덕궁에 주로 거주하면서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한양의 궁궐이 모두 불탄 이후, 법궁이던 경복궁은 터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재건되지 않았습니다. 창덕궁이 궁궐 중에 가장 먼저 재건되었으며, 재건된 연도는 1610년 (광해군 2년) 이었습니다. 이렇게 재건된 창덕궁은 이후 경복궁이 재건될 때까지 270여 년간 법궁의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내부

돈화문

파일:돈화문.jpg

돈화문 (敦化門) 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1412년 (태종 12년) 에 건립되었습니다. 창건 당시 창덕궁의 앞에 종묘가 자리잡고 있어서 궁의 진입로를 종묘 서쪽으로 내야 했기 때문에 돈화문은 서쪽에 치우쳐 세워졌습니다. 돈화문은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1608년 (광해군 원년) 에 재건되었습니다. 앞에 넓은 월대가 있는데, 일제 초기에 왕과 총독부 고관들이 자동차를 타고 창덕궁을 드나들면서 도로로 바뀌었다가 1997년에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다시 복원했습니다. 돈화문은 왕의 행차와 같은 의례 시에 출입문으로 사용되었고, 신하들은 서쪽에 있는 금호문을 통해 출입했습니다. 2층 누각에 종과 북을 매달아서 통행금지 시간에 종을 치고 해제 시간에는 북을 쳤다고 합니다. 현재 돈화문은 보물 38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