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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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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노태우 정부는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총재와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총재와의 [[3당 합당]]을 통해 거대 여당인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자유민주당 (1963)|자유민주당]]을 만들어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노태우 정부는 비록 북방 정책의 성과를 거두고 UN에 남북한이 함께 가입 하는 등 평화 시대를 열였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는다. | [[1990년]], 노태우 정부는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총재와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총재와의 [[3당 합당]]을 통해 거대 여당인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자유민주당 (1963)|자유민주당]]을 만들어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노태우 정부는 비록 북방 정책의 성과를 거두고 UN에 남북한이 함께 가입 하는 등 평화 시대를 열였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받는다. | ||
==== | ==== 문민정부 (김영삼 정부, 임기: 1993년 ~ 1998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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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단일화에 실패했었던 [[김영삼]], [[김대중]]이 모두 나왔으며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도 출마하였다. 결과는 자유민주당 김영삼 후보의 당선이었다. [[김영삼 정부]](문민 정부)는 최초의 민간인 정부라는 상징성이 있었으며, [[금융 실명제]], [[하나회]] 해체 등을 단행하며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신군부 세력을 법정에 세우는 등의 과거사 청산 작업도 실시하였다. 또한, [[지방 자치제]]의 전면적 실시를 단행하며 수직적 권력 분립에도 한 걸음 다가섰다. 하지만 이 정부가 근본적으로 군사독재 세력과의 합당을 통해 탄생한 정부이며, 그리고 재벌의 견제도 있었기 때문에 개혁 노력도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WTO]]와 [[OECD]] 가입과 같은 세계화 정책은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IMF 구제금융사건|외환 위기]]를 불러오게 되었고, 게다가 대통령 [[김영삼]] 아들의 비리를 비롯한 각종 공직자 비리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낮은 지지율로 불명예스럽게 임기를 마친다. 게다가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이회창]]과 [[이인제]]로 분산 출마하면서 결국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다. |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단일화에 실패했었던 [[김영삼]], [[김대중]]이 모두 나왔으며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도 출마하였다. 결과는 자유민주당 김영삼 후보의 당선이었다. [[김영삼 정부]](문민 정부)는 최초의 민간인 정부라는 상징성이 있었으며, [[금융 실명제]], [[하나회]] 해체 등을 단행하며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신군부 세력을 법정에 세우는 등의 과거사 청산 작업도 실시하였다. 또한, [[지방 자치제]]의 전면적 실시를 단행하며 수직적 권력 분립에도 한 걸음 다가섰다. 하지만 이 정부가 근본적으로 군사독재 세력과의 합당을 통해 탄생한 정부이며, 그리고 재벌의 견제도 있었기 때문에 개혁 노력도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WTO]]와 [[OECD]] 가입과 같은 세계화 정책은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IMF 구제금융사건|외환 위기]]를 불러오게 되었고, 게다가 대통령 [[김영삼]] 아들의 비리를 비롯한 각종 공직자 비리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낮은 지지율로 불명예스럽게 임기를 마친다. 게다가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이회창]]과 [[이인제]]로 분산 출마하면서 결국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다. | ||
====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 임기: 1998년~2003년) ==== | ==== 국민의 정부 (김대중 정부, 임기: 1998년 ~ 2003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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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92년에 낙선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4수 끝에 당선되어,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다. [[김대중 정부]](국민의 정부)는 [[햇볕 정책]]과 그 구체적 성과물인 [[남북 정상 회담|제 1차 남북 정상 회담]]을 치러냄으로써 등으로 남북 평화에 기여했으며, 복지의 근간이 부실한 대한민국에 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을 도입하며 복지의 기본 틀을 마련했으며, 평소 인권에 대한 지론을 바탕으로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고 관련 법을 제정하여 인권을 한 걸음 진전시켰으며, 무엇보다도 [[1997년]] [[IMF 구제금융사건|IMF에 구제금융]]을 받으며 어려움에 처했던 나라 경제를 빨리 회복시켰으며, 전 세계적 스포츠 행사였던 [[2002년 FIFA 월드컵]]을 무난히 치러냈다는 점과 같은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와 마찬가지로 정권 말기에 아들들이 비리로 구속되며 임기 말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4회 지방 선거|2002년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는 등, 김영삼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순탄치 않게 임기를 마친다. 또한 국·공기업 매각과 고용 유연화와 같이 대한민국에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도입하는 등 잘못된 경제 처방을 하는 바람에 복지와 시장경제를 병행하겠다는 말과는 다르게 되려 양극화를 심화시키는데 앞장섰다는 비판도 받는다. |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92년에 낙선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4수 끝에 당선되어,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다. [[김대중 정부]](국민의 정부)는 [[햇볕 정책]]과 그 구체적 성과물인 [[남북 정상 회담|제 1차 남북 정상 회담]]을 치러냄으로써 등으로 남북 평화에 기여했으며, 복지의 근간이 부실한 대한민국에 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을 도입하며 복지의 기본 틀을 마련했으며, 평소 인권에 대한 지론을 바탕으로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고 관련 법을 제정하여 인권을 한 걸음 진전시켰으며, 무엇보다도 [[1997년]] [[IMF 구제금융사건|IMF에 구제금융]]을 받으며 어려움에 처했던 나라 경제를 빨리 회복시켰으며, 전 세계적 스포츠 행사였던 [[2002년 FIFA 월드컵]]을 무난히 치러냈다는 점과 같은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와 마찬가지로 정권 말기에 아들들이 비리로 구속되며 임기 말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4회 지방 선거|2002년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는 등, 김영삼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순탄치 않게 임기를 마친다. 또한 국·공기업 매각과 고용 유연화와 같이 대한민국에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도입하는 등 잘못된 경제 처방을 하는 바람에 복지와 시장경제를 병행하겠다는 말과는 다르게 되려 양극화를 심화시키는데 앞장섰다는 비판도 받는다. | ||
==== | ==== 참여정부 (노무현 정부, 임기: 2003년 ~ 2008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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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참여 정부)는[[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1997년]] 낙선한 뒤 재출마한 이회창 후보를 근소한 차로 누르고 당선되어 [[2003년]]에 성립되었다. 참여정부 시기 [[2004년]], 헌정 사상 유례없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가 의회에서 가결되었으나, 이는 여론의 역풍을 맞아 한 달 뒤 치러진 [[대한민국 제17대 총선|제17대 총선]]에서 집권당이었던 민주개혁세력 [[열린우리당]]이 원내 다수당이 된다. 이런 안정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김대중 정부가 시작한 복지의 기본 틀을 유지하며 종합부동산세 도입과 파격적 인사 단행등을 거치며 권위주의 타파와 같은 과거사 청산 작업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비록 위헌으로 판결나긴 했지만 [[2004년 대한민국 행정수도 이전 계획|행정수도]] 이전도 추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대 개혁 입법과 같은 각종 개혁 정책의 실패와 이라크 파병으로 지지층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역시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맥을 잇는 [[한미 FTA]] 등을 추진하여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또한 노동자에 대한 탄압이 줄지 않는 등 겉모습만 요란했을 뿐, 실제로는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러한 연유로, [[대한민국 제4회 지방 선거|2006년 지방 선거]]에서 야당에게 완패를 당하는 등, 다른 역대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임기 말에 낮은 지지율로 극심한 레임덕을 겪었다. 위와 같이 국민들의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으로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유례없이 여당 후보인 2위 [[정동영]]을 500만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되었다. | [[노무현 정부]](참여 정부)는[[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1997년]] 낙선한 뒤 재출마한 이회창 후보를 근소한 차로 누르고 당선되어 [[2003년]]에 성립되었다. 참여정부 시기 [[2004년]], 헌정 사상 유례없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가 의회에서 가결되었으나, 이는 여론의 역풍을 맞아 한 달 뒤 치러진 [[대한민국 제17대 총선|제17대 총선]]에서 집권당이었던 민주개혁세력 [[열린우리당]]이 원내 다수당이 된다. 이런 안정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김대중 정부가 시작한 복지의 기본 틀을 유지하며 종합부동산세 도입과 파격적 인사 단행등을 거치며 권위주의 타파와 같은 과거사 청산 작업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비록 위헌으로 판결나긴 했지만 [[2004년 대한민국 행정수도 이전 계획|행정수도]] 이전도 추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대 개혁 입법과 같은 각종 개혁 정책의 실패와 이라크 파병으로 지지층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역시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맥을 잇는 [[한미 FTA]] 등을 추진하여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또한 노동자에 대한 탄압이 줄지 않는 등 겉모습만 요란했을 뿐, 실제로는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러한 연유로, [[대한민국 제4회 지방 선거|2006년 지방 선거]]에서 야당에게 완패를 당하는 등, 다른 역대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임기 말에 낮은 지지율로 극심한 레임덕을 겪었다. 위와 같이 국민들의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으로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유례없이 여당 후보인 2위 [[정동영]]을 500만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되었다. | ||
==== 이명박 정부 (임기: 2008년~2013년) ==== | ==== 이명박 정부 (임기: 2008년 ~ 2013년) ==== | ||
{{참고|이명박 정부}} | {{참고|이명박 정부}} | ||
[[2008년]]에 실시된 [[대한민국 18대 총선|제18대 총선]]에서도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압승을 하며 안정적인 정국 운영을 할 듯 보였으나, 총선 직후에 논란이 된 [[2008년 대한민국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광우병 의혹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과 광우병 사태로 인해 벌어진 대규모 [[2008년 대한민국의 촛불 시위|촛불 시위]]로 임기 초반부터 지지도가 급격히 하락하며 정국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9년]] 5월에는 전직 대통령인 [[노무현]]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정부는 장례 과정을 미온적으로 처리했고 이는 당시 검찰의 편파적 수사 의혹과 겹치며 다시 한번 정권에 위기를 가져다 주는 듯했으나, 얼마 뒤 8월에 [[김대중]]이 병사했을 때는 국장으로 대우하는 등 적극적으로 임하였고 이는 정부의 친서민 슬로건과 겹치며 국정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독단적 정국 운영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아, 지방선거 직전 [[천안함 사건]]이 터져 여권에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2010년 지방 선거]]에서 패배하였다. 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에 반대적인 친자유민주적인 정권운영을 펼쳤다. 이는 북한을 고립시키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에 따라 북한과의 마찰이 빚어져 천안함사건과 연평도포격사건이 터졌다. 그럼에도 국제적 위상은 높아져 2010년에는 서울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였다. 하지만, 정권 후기에 들어서는 내곡동에 위치한 사저와 관련한 논란과 4대강 사업의 부실공사 및 자연파괴와 관련한 논란, 불법 민간인 사찰로 인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다 핵안보 정상 회의로 지지율이 반등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를 탁월하게 넘어가는등, 경제 관련 정책에서는 어느정도의 성과가 있었지만,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지적도 받는다. | [[2008년]]에 실시된 [[대한민국 18대 총선|제18대 총선]]에서도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압승을 하며 안정적인 정국 운영을 할 듯 보였으나, 총선 직후에 논란이 된 [[2008년 대한민국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논란|광우병 의혹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과 광우병 사태로 인해 벌어진 대규모 [[2008년 대한민국의 촛불 시위|촛불 시위]]로 임기 초반부터 지지도가 급격히 하락하며 정국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9년]] 5월에는 전직 대통령인 [[노무현]]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정부는 장례 과정을 미온적으로 처리했고 이는 당시 검찰의 편파적 수사 의혹과 겹치며 다시 한번 정권에 위기를 가져다 주는 듯했으나, 얼마 뒤 8월에 [[김대중]]이 병사했을 때는 국장으로 대우하는 등 적극적으로 임하였고 이는 정부의 친서민 슬로건과 겹치며 국정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독단적 정국 운영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아, 지방선거 직전 [[천안함 사건]]이 터져 여권에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제5회 지방 선거|2010년 지방 선거]]에서 패배하였다. 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에 반대적인 친자유민주적인 정권운영을 펼쳤다. 이는 북한을 고립시키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에 따라 북한과의 마찰이 빚어져 천안함사건과 연평도포격사건이 터졌다. 그럼에도 국제적 위상은 높아져 2010년에는 서울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였다. 하지만, 정권 후기에 들어서는 내곡동에 위치한 사저와 관련한 논란과 4대강 사업의 부실공사 및 자연파괴와 관련한 논란, 불법 민간인 사찰로 인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다 핵안보 정상 회의로 지지율이 반등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를 탁월하게 넘어가는등, 경제 관련 정책에서는 어느정도의 성과가 있었지만,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지적도 받는다. | ||
==== 박근혜 정부(임기: 2013년~2017년) ==== | ==== 박근혜 정부 (임기: 2013년 ~ 2017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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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ass protest in Cheonggye Plaza 01.jpg|thumb|left|[[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6월 항쟁]] 이후 최다 인원이 참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 [[파일:Mass protest in Cheonggye Plaza 01.jpg|thumb|left|[[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6월 항쟁]] 이후 최다 인원이 참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 ||
[[박근혜 정부]]는 [[박근혜]]가 2013년 2월 25일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시작되었다. 2016년 말, [[최순실 게이트|최순실 등의 민간인이 국정을 농단]]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박근혜에 대한 퇴진 운동]]이 거세지자,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그 다음해인 2017년 3월 10일에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에서 국회의 탄핵 소추안을 인용하여 박근혜가 파면되면서 박근혜 정부는 종료되었다. 박근혜는 지금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지금은 서울구치소에 있다. | [[박근혜 정부]]는 [[박근혜]]가 2013년 2월 25일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시작되었다. 2016년 말, [[최순실 게이트|최순실 등의 민간인이 국정을 농단]]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박근혜에 대한 퇴진 운동]]이 거세지자,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그 다음해인 2017년 3월 10일에 [[대한민국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에서 국회의 탄핵 소추안을 인용하여 박근혜가 파면되면서 박근혜 정부는 종료되었다. 박근혜는 지금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지금은 서울구치소에 있다. | ||
==== 문재인 정부(임기: 2017년~2022년) ==== | ==== 문재인 정부 (임기: 2017년 ~ 2022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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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종료되고 난 뒤인 [[2017년]] [[5월 9일]]에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이 되고, 다음날인 [[5월 10일]] 오전 8시 9분에 기하여 문재인 정부가 시작되었다. |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종료되고 난 뒤인 [[2017년]] [[5월 9일]]에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이 되고, 다음날인 [[5월 10일]] 오전 8시 9분에 기하여 문재인 정부가 시작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