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창립 멤버. 1926년 8월에 임시정부 국무령(수상)을, 1939년 10월 임정 수반 이동녕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에는 임시정부 주석을 맡아왔다. 1980년대 이후에는 그의 단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평가가 수정되고 있다.
행적
임정의 최고지도자로 알려졌지만 사실 임정 수립 초기에는 경무국장(경찰국장)으로 임정 최고 지도자는 아니였다.
그가 독립운동가 전체를 대표한다는 증거는 없는데도 독립운동가 전체의 대표인 것처럼 잘못 받아들여졌다.
1980년대 이후 브루스 커밍스, 로버트 스칼라피노, 리처드 로빈슨 등은 송진우의 암살범으로 지목했고 몇몇 암살 사건의 배후로 그가 지목되었다.
브루스커밍스는 신탁통치 문제 직후 송진우가 그의 추종자들에게 암살된 점을 들어 김구를 배후로 지목했고, 로버트 스칼라피노나 리처드 로빈슨도 송진우의 암살범으로 김구를 지목했다. 로빈슨은 서울 주재 미국 취재기자로 조병옥이 미국 인사들과의 술자리에서 취중에 송진우가 중도주의자로 영향력을 넓히는 것을 두려워한 김구가 그를 죽였다고 발언한 것을 듣고 기록하였다.
4.3 사건 당시 윤치영과 이범석은 강력한 극우가 사건에 가담했다며 김구가 여순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주장을 하여 김구는 그 극우가 누구냐고 따지기도 했다.
그의 암살 당시 한국 정부의 한 고위층은 그가 쿠테타를 일으키려다가 실패하고 암살당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것은 뉴스에 보도되지 않고 리처드 로빈슨이 외신에 한국 정부의 익명의 대표자의 발언을 입수한 것이다.
한편 이승만은 김구의 추모장에서 한때의 애국자의 명예를 더럽힐수 있는 일은 밝히기 힘들다는 묘한 발언을 했는데 이건 뉴스로 보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