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1011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Han1011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1번째 줄:
{{한국사}}
{{한국사}}
한반도의 고대 국가. 기원전 57년에 [[박혁거세]]가 건국했다. 935년 56대 [[경순왕]]을 마지막으로 멸망하게 된다.
한반도의 고대 국가. 기원전 57년에 [[박혁거세]]가 건국했다. 935년 56대 [[경순왕]]을 마지막으로 멸망하게 된다. 존속기간만 해도 천년 가까이 된다. 하지만 발전이 매우 더뎠기 때문에 완전한 고대 국가 형태를 갖춘 때는 6세기 [[지증왕]] 때 부터라고 할 수 있다.
 
 
존속기간만 해도 천년 가까이 된다. 하지만 발전이 매우 더뎠기 때문에 완전한 국가 형태를 갖춘 때는 6세기 [[지증왕]] 때 부터라고 할 수 있다.
 
==역사==
==역사==
=== 건국과 발전 ===
=== 건국과 발전 ===
19번째 줄: 15번째 줄:


===전성기와 삼국통일===
===전성기와 삼국통일===
23대 지증왕은 왕호를 '왕'으로 변경하였다. 우산국<ref>울릉도에 있던 고대국가</ref>도 정벌했다. 내정면에선 우경<ref name=":0" />을 장려하고, 순장을 금지하는 등의 정책을 펼쳤다.
23대 지증왕은 왕호를 '왕'으로 변경하였다. 우산국<ref>울릉도에 있던 고대국가</ref>도 정벌했다. 내정면에선 우경을 장려하고, 순장을 금지하는 등의 정책을 펼쳤다.


24대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를 바탕으로 불교를 공인했다. 또,금관가야를 정벌하기도 하였다. 율령을 반포한 것 역시 법흥왕이었다. 신라는
24대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를 바탕으로 불교를 공인했다. 또,금관가야를 정벌하기도 하였다. 율령을 반포한 것 역시 법흥왕이었다. 신라는
28번째 줄: 24번째 줄:
===통일신라===
===통일신라===
문무왕은 외사정을 파견하는 등의 정책을 펼쳤다.
문무왕은 외사정을 파견하는 등의 정책을 펼쳤다.
신문왕대에는 김흠돌의 난을 진압했고,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를 통해 왕권을 강화시켰다. 9주5소경또한 이 때 정립되었다. 원성왕 대에는 독서삼품과를 실시했다. 통일 신라는 200년 동안 번영을 누리며 여러 문화유산을 남기고, 경덕왕 대에는 불국사와 석굴암같은 문화유산도 만들었다.  
신문왕대에는 김흠돌의 난을 진압했고,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를 통해 왕권을 강화시켰다. 9주5소경또한 이 때 정립되었다. 성덕왕 때는 정전을 지급했다. 원성왕 대에는 독서삼품과를 실시했다. 통일 신라는 200년 동안 번영을 누리며 여러 문화유산을 남기고, 경덕왕 대에는 불국사와 석굴암같은 문화유산도 만들었다.  
===신라말기의 사회 혼란===
===신라말기의 사회 혼란===
신라는 800년대 후반부터 점점 쇠락하기 시작했고, 호족의 힘이 강화되며 또다시 분열되고 만다. 이를 [[후삼국시대]] 라고 한다. 후삼국시대의 일원인 후백제는 견훤에 의해 건국되었고 서쪽에서 신라를 공격해 영토를 넓혔으며, 태봉(후에 고려가 됨)은 북쪽에서 신라를 공격했다. 이때는 서로 전쟁을 한다고 한반도 전체가 혼란에 빠져있었다. 그와중에 [[발해]]가 요나라의 침입으로 926년에 멸망했다. 이후에는 [[고려]]가 936년 후삼국을 통일한 것을 시작으로 통일 왕조 시대가 열린다.
신라는 800년대 후반부터 점점 쇠락하기 시작했고, 호족의 힘이 강화되며 또다시 분열되고 만다. 이 당시 경덕왕이 녹읍을 부활시킨 것도 왕권이 약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김헌창의 난, 96각간의 난, 장보고의 난, 원종과 애노의 난 등 신라말의 사회 혼란을 틈타 여러 호족들이 세력을 이뤘는데, 이 시기를 [[후삼국시대]] 라고 한다. 후삼국시대의 일원인 후백제는 견훤에 의해 건국되었고 서쪽에서 신라를 공격해 영토를 넓혔으며, 태봉(후에 고려가 됨)은 북쪽에서 신라를 공격했다. 이때는 서로 전쟁을 한다고 한반도 전체가 혼란에 빠져있었다. 그와중에 [[발해]]가 요나라의 침입으로 926년에 멸망했다. 이후에는 [[고려]]가 936년 후삼국을 통일한 것을 시작으로 통일 왕조 시대가 열린다.
 
== 문화 ==
 
=== 무덤 ===
초기에는 돌무지 덧널무덤이라는 신라 고유의 방식을 이용했다. 이 방식은 도굴이 다른 고분에 비해 어려워 보존상태가 다른 고분에 비해 양호하고, 유물 역시 잘 보존된 편이다. 후기에는 굴식 돌방무덤이 유행했다.
 
=== 신분제 ===
골품제도라는 신분제가 존재했다. 이 제도는 성골, 진골, -6~1두품으로 백성의 신분을 나누었는데, 신분에 따라 오를 수 있는 관직이 제한되었다. 이는 후기에 최치원을 비롯한 6두품의 출세에서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 인물 ==
 
* 강수
* 김춘추 - 29대 왕
* 설총
* 최치원
* 장보고
* 이사부
* 사다함
* 김유신
* 원효
* 혜초 - 왕오천축국전의 저자
* 의상
 
==문화유산==
==문화유산==
===유물===
===유물===
42번째 줄: 61번째 줄:
* 금제 장신구들
* 금제 장신구들
* 환두대도
* 환두대도
*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
===유적===
===유적===
* 불국사
* 불국사
58번째 줄: 78번째 줄:
* 문무대왕릉
* 문무대왕릉
* 황룡사지
* 황룡사지
*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
* 경주 배동 여래 삼존 입상
====비석====
====비석====
* 진흥왕의 순수비
* 진흥왕의 순수비
66번째 줄: 88번째 줄:
* 명활산성비
* 명활산성비


== 각주 ==
[[분류:옛날 국가]]
[[분류:옛날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