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숲백과>Han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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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년]]엔 [[침류왕]]이 [[불교]]를 공인했다.
[[385년]]엔 [[침류왕]]이 [[불교]]를 공인했다.
===웅진시기===
===웅진시기===
[[475년]], 개로왕은 [[고구려]]의 [[스파이]]인 [[도림]]과 [[향락]]에 빠져 나라 일을 소홀히 하고, 결국 [[위례성]]이 함락된다. 백제는 수도를 [[웅진]]으로 옮겼다.
[[475년]], 개로왕은 [[고구려]]의 [[스파이]]인 [[도림]]과 [[향락]]에 빠져 나라 일을 소홀히 하고, 결국 [[위례성]]이 함락된다. 백제의 문주왕은 지원하러 왔다가 이미 함락된 것을 보고 당황한 신라 병사들과 함께 수도를 [[웅진]]으로 옮겼다.


동성왕 때는 [[혼인]]으로 [[신라]]와의 [[동맹]]을 강화하였다.
동성왕 때는 [[혼인]]으로 [[신라]]와의 [[동맹]]을 강화하였다.
===중흥기===
===중흥기===
무령왕은 22담로 실시 했고 무령왕릉을 남겼다.
 
[[538년]] 수도를 [[사비]]로 옮긴다. 성왕 대에는 일시적으로 한강 유역을 회복하나 신라의 [[배신]]으로 [[나제동맹]]은 깨지고 한강 유역을 다시 잃게 된다.
==== 백제의 중흥 ====
무령왕은 22담로<ref>왕족을 22담로에 보내 통치하게 하는 제도</ref>를 실시 했고 무령왕릉을 남겼다.
 
성왕은 [[538년]] 수도를 [[사비]]로 옮기고 남부여를 선포한다.
 
교류가 활발해지고 16관등제와 22부도 이시기에 정립된다.
 
==== 중흥기의 끝 ====
성왕 대에는 일시적으로 한강 유역을 회복하나 신라의 [[배신]]으로 [[나제동맹]]은 깨지고 한강 유역을 다시 잃게 된다.
결국 성왕은 신라와의 [[관산성 전투]]에서 죽는다.
===약화와 멸망기===
===약화와 멸망기===
[[660년]] [[나당연합군]]에게 [[멸망]] 당한다.
 
==== 기타왕 ====
귀족권력이 점차 세졌다.
 
==== 의자왕 ====
의자왕은 처음엔 잘했는데 뒤로 갈수록 정치를 못했다.
처음엔 당항성 전투, 대야성 전투를 이기고, 신라를 제압하는등 선전했다.
 
중국과 외교관계도 끊었다.
 
참고로 이때 신라에게서 약 40여개 성을 먹었다.<ref>출처:삼국사기</ref>
 
그러나 말기로 갈수록 향락에 빠지고, 사치와 충신 숙청<ref>성충과 흥수를 숙청했다. 특히 성충은 향락을 말렸다는 이유(...)</ref>                           
 
이 때 도 충신은 있었다. 성충은 향락을 말렸고, 흥수는 탄현과 기벌포에서 막으라고 했다.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귀족군을 모으지도,  탄현과 기벌포에서 막지도 못한다....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장군이 잘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국[[660년]] [[나당연합군]]에게 [[멸망]]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