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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고대 국가. 기원전 57년에 [[박혁거세]]가 건국했다. 935년 56대 [[경순왕]]을 마지막으로 멸망하게 된다. | 한반도의 고대 국가. 기원전 57년에 [[박혁거세]]가 건국했다. 935년 56대 [[경순왕]]을 마지막으로 멸망하게 된다. 존속기간만 해도 천년 가까이 된다. 하지만 발전이 매우 더뎠기 때문에 완전한 고대 국가 형태를 갖춘 때는 6세기 [[지증왕]] 때 부터라고 할 수 있다. | ||
==역사== | |||
=== 건국과 발전 === | |||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건국되었다. 서라벌(지금의 경주)에 건국되었다. | |||
신라는 귀족의 힘이 강했고, 왕권이 약했다. 이는 초기에 박혁거세의 박씨, 석탈해의 석씨, 김알지의 김씨가 왕을 돌아가며 한 점에서도 드러난다. 왕권이 조금 강해진 시기는 21대 [[내물 마립간]] 때였다. | |||
내물마립간은 고구려의 도움을 받아 외적의 침략을 격퇴했고, 눌지마립간은 433년 나제동맹을 체결했다. | |||
위치도 그렇고 여러가지 문제 때문에 [[백제]]와 [[고구려]]보다 발전이 매우 느렸으며, 가장 먼저 건국되었지만 가장 마지막에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 |||
고구려는 소수림왕이 4세기에 [[법|율령]]을 반포했지만, 신라는 6세기가 되어서야 율령이 반포되었다. 또한 국호도 6세기 지증왕 때 신라로 결정되었다.<ref name=":0">그 이전에는 다양한 명칭이 있었는데, 주로 ‘사로(국)’라고 불렀다.</ref> 건국 후 600년이 지나서야 완전한 국가가 된 셈이다. 왕도 지증왕 이전에는 왕 대신 다른 칭호로 불렸다. 박혁거세는 거서간, 박남해는 차차웅, 박유리~석흘해는 ‘이사금’, 김내물~김소지는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 |||
===전성기와 삼국통일=== | |||
23대 지증왕은 왕호를 '왕'으로 변경하였다. 우산국<ref>울릉도에 있던 고대국가</ref>도 정벌했다. 내정면에선 우경을 장려하고, 순장을 금지하는 등의 정책을 펼쳤다. | |||
24대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를 바탕으로 불교를 공인했다. 또,금관가야를 정벌하기도 하였다. 율령을 반포한 것 역시 법흥왕이었다. 신라는 | |||
25대 진흥왕 때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 시기 신라는 함경도 일부 지역까지도 영토를 확장시키고, 한강유역을 독차지했다. 또, 사다함 등을 보내 대가야를 멸망시켰다. | |||
이후 27대 선덕여왕대에는 자장법사의 건의로 황룡사 9층목탑을 만들었다. 이는 이후 고려와 몽골의 전쟁당시 소실되었다. | |||
28대 진덕여왕이 마지막 성골 왕이었고, 이후 29대 태종무열왕 김춘추부터는 진골 출신 왕이 즉위하였다. | |||
신라는 642년 고구려에게 동맹제의를 거부당하자 648년 나당동맹을 체결했다. 이후 660년,668년 차례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하지만 당나라가 웅진 도독부를 설치하며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고 했다.결국 매소성전투(675)와 기벌포전투(676)를 치르고 난 676년이 되서야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했다. | |||
===통일신라=== | |||
문무왕은 외사정을 파견하는 등의 정책을 펼쳤다. | |||
신문왕대에는 김흠돌의 난을 진압했고,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를 통해 왕권을 강화시켰다. 9주5소경또한 이 때 정립되었다. 성덕왕 때는 정전을 지급했다. 원성왕 대에는 독서삼품과를 실시했다. 통일 신라는 200년 동안 번영을 누리며 여러 문화유산을 남기고, 경덕왕 대에는 불국사와 석굴암같은 문화유산도 만들었다. | |||
===신라말기의 사회 혼란=== | |||
신라는 800년대 후반부터 점점 쇠락하기 시작했고, 호족의 힘이 강화되며 또다시 분열되고 만다. 이 당시 경덕왕이 녹읍을 부활시킨 것도 왕권이 약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김헌창의 난, 96각간의 난, 장보고의 난, 원종과 애노의 난 등이 일어나고 신라말의 사회 혼란을 틈타 여러 호족들이 세력을 이뤘는데, 이 시기를 [[후삼국시대]] 라고 한다. 후삼국시대의 일원인 후백제는 견훤에 의해 건국되었고 서쪽에서 신라를 공격해 영토를 넓혔으며, 태봉(후에 고려가 됨)은 북쪽에서 신라를 공격했다. 이때는 서로 전쟁을 한다고 한반도 전체가 혼란에 빠져있었다. 그와중에 [[발해]]가 요나라의 침입으로 926년에 멸망했다. 이후에는 [[고려]]가 936년 후삼국을 통일한 것을 시작으로 통일 왕조 시대가 열린다. | |||
== | == 문화 == | ||
=== 무덤 === | |||
초기에는 돌무지 덧널무덤이라는 신라 고유의 방식을 이용했다. 이 방식은 도굴이 다른 고분에 비해 어려워 보존상태가 다른 고분에 비해 양호하고, 유물 역시 잘 보존된 편이다. 후기에는 굴식 돌방무덤이 유행했다. | |||
=== 신분제 === | |||
골품제도라는 신분제가 존재했다. 이 제도는 성골, 진골, 6,5,4,3,2,1두품으로 백성의 신분을 나누었는데, 신분에 따라 오를 수 있는 관직이 제한되었다. 이는 후기에 최치원을 비롯한 6두품의 출세에서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 |||
=== 문학 === | |||
대표적인 문학 양식으로 향가가 있다. 향가는 4구체, 8구체, 10구체 향가로 나뉜다. 대표적인 신라시대 향가로 찬기파랑가, [[도솔가]], 처용가, 제망매가 등이 존재한다 | |||
=== 언어 === | |||
한자를 변형한 이두와 향찰이 사용되었다. | |||
== 인물 == | |||
* 강수 | |||
* 김춘추 - 29대 왕 | |||
* 설총 | |||
* 최치원 | |||
* 장보고 | |||
* 이사부 | |||
* 사다함 | |||
* 김유신 | |||
* 원효 | |||
* 혜초 - 왕오천축국전의 저자 | |||
* 의상 | |||
== | ==문화유산== | ||
===유물=== | |||
* 무구정광대다라니경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국보)이다. 석가탑내부에서 사리장엄구들과 함께 출토되었다. | |||
* 기마인물형토기(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국보 | |||
* 금관- 여러 무덤에서 다양한 금관이 출토되었다. 황남대총 금관이 유명하고 국보로도 지정되어있다. | |||
== | *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신라와 서역 간의 교류를 보여주는 출토품이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되었다. | ||
* 천마도 - 천마총에서 출토된 그림(국보) | |||
* 토우 | |||
== | * 14면체 주사위(주령구)-안압지에서 출토되었다. | ||
* 금제 장신구들 - 금귀걸이, 금허리띠 등. 일부는 지정문화재다. | |||
* 환두대도 | |||
*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 - 국보다. | |||
===유적=== | |||
* 불국사 | |||
** 불국사 다보탑 | |||
** 불국사 석가탑 | |||
* 감은사지 | |||
** 감은사지 삼층석탑 | |||
* 분황사 모전석탑 | |||
* 석굴암 | |||
* 대릉원 | |||
** 황남대총 - 유리병이 출토된 장소이다. 두 개의 무덤으로 구성되어있다. | |||
** 천마총 | |||
* 첨성대 - 선덕여왕 때 축조된 천문대이다. | |||
* 노서동/노동동 고분군 | |||
* 문무대왕릉 -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 | |||
* 황룡사지 - 지금은 불타 없어진 9층 목탑이 있었던 곳이다. | |||
*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 | |||
* 경주 배동 여래 삼존 입상 | |||
* 포석정지 | |||
* 안압지 | |||
* 명활산성 | |||
====비석==== | |||
* 진흥왕의 순수비 | |||
**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현재는 중앙박물관에 있다. 국보이다. | |||
** 마운령비-북한에 있다. | |||
** 황초령비-북한에 있다. | |||
* 단양 적성비 | |||
* 명활산성비 | |||
* 임신서기석 | |||
[[분류: | == 각주 == | ||
[[분류:옛 나라]] | |||
[[분류:신라| ]] | |||
[[분류:한국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