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숲백과>Han1011 편집 요약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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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 개요 == | ||
'''백제( | '''백제([[百]][[濟]])'''는 건국자는 [[온조]]이며 기원전 18년부터 660년까지 존재했던 고대 한국의 [[나라]]이다. | ||
== 왕 목록 == | == 왕 목록 == | ||
1대 [[온조왕]] -건국 | 1대 [[온조왕]] -[[건국]] | ||
2대 다루왕 | 2대 [[다루왕]] | ||
3대 기루왕 | 3대 [[기루왕]] | ||
4대 개루왕 | 4대 [[개루왕]] | ||
5대 초고왕 | 5대 [[초고왕]] | ||
6대 구수왕 | 6대 [[구수왕]] | ||
7대 사반왕 | 7대 [[사반왕]] | ||
8대 고이왕 | 8대 [[고이왕]] | ||
9대 책계왕 | 9대 [[책계왕]] | ||
10대 분서왕 | 10대 [[분서왕]] | ||
11대 비류왕 | 11대 [[비류왕]] | ||
12대 설왕 | 12대 [[설왕]] | ||
13대 근초고왕<ref> | 13대 [[근초고왕]]<ref>[[전성기]]를 이끈 왕이다.</ref> | ||
14대 [[근구수왕]] | |||
15대 [[침류왕]] - [[불교]] [[공인]] | |||
16대 [[진사왕]] | |||
17대 [[아신왕]] | |||
18대 [[전지왕]] | |||
19대 [[구이신왕]] | |||
20대 [[비유왕]] | |||
21대 [[개로왕]] - [[도림]]에게 빠져 [[위례성]]을 빼앗김 | |||
22대 [[문주왕]] - [[웅진]] [[천도]] | |||
23대 [[삼근왕]] | |||
24대 [[동성왕]] -[[혼인]]으로 [[나제동맹]] 강화 | |||
25대 [[무령왕]] - 백제의 [[중흥]]기. | |||
26대 [[성]]왕 - [[사비]] 천도 + 남부여 선포 + 나제동맹 해체 | |||
27대 [[위덕왕]] | |||
28대 [[혜왕]] | |||
29대 [[법왕]] | |||
30대 [[무왕]] | |||
31대 [[의자왕]]- [[나당연합군]]에게 멸망. | |||
== 역사 == | |||
===건국=== | |||
[[기원전 18년]] 온조가 [[하남 위례성]]에 십제를 건국하고 비류가 미추홀, 오늘날 인천 일대에 비류국을 건국한다. 전설 상 두 사람은 형제라고 하는데 이는 원래 같은 부여계 이민자들의 서로 다른 국가였는데 비류국은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근처의 십제에게 먹혀 형제 전설로 발전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건국 당시 이름은 십제였으나 곧 백제로 바꿨다. 이 때는 [[마한]]의 [[국가]]중 하나였다. 이후에 마한의 소국들을 하나하나 침략하면서 백제의 속국으로 만든다. | |||
===전성기=== | |||
한강 유역을 가장 먼저 차지한 백제는 [[4세기]] 중엽, 근초고왕 때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때는 [[평양성 전투]]에서 [[고국원왕|고구려 왕]]을 죽이는 성과도 있었다. | |||
[[385년]]엔 [[침류왕]]이 [[불교]]를 공인했다. | |||
===웅진시기=== | |||
[[475년]], 개로왕은 [[고구려]]의 [[스파이]]인 [[도림]]과 [[향락]]에 빠져 나라 일을 소홀히 하고, 결국 [[위례성]]이 함락된다. 백제의 문주왕은 지원하러 왔다가 이미 함락된 것을 보고 당황한 신라 병사들과 함께 수도를 [[웅진]]으로 옮겼다. | |||
동성왕 때는 [[혼인]]으로 [[신라]]와의 [[동맹]]을 강화하였다. | |||
===중흥기=== | |||
==== 백제의 중흥 ==== | |||
무령왕은 22담로<ref>왕족을 22담로에 보내 통치하게 하는 제도</ref>를 실시 했고 무령왕릉을 남겼다. | |||
성왕은 [[538년]] 수도를 [[사비]]로 옮기고 남부여를 선포한다. | |||
교류가 활발해지고 16관등제와 22부도 이시기에 정립된다. | |||
==== 중흥기의 끝 ==== | |||
성왕 대에는 일시적으로 한강 유역을 회복하나 신라의 [[배신]]으로 [[나제동맹]]은 깨지고 한강 유역을 다시 잃게 된다. | |||
결국 성왕은 신라와의 [[관산성 전투]]에서 죽는다. | |||
===약화와 멸망기=== | |||
==== 27대 위덕왕~29대 법왕 ==== | |||
귀족권력이 점차 세졌다. | |||
==== 의자왕 ==== | |||
===== 중흥 ===== | |||
의자왕은 처음엔 잘했는데 뒤로 갈수록 정치를 못했다. | |||
처음엔 당항성 전투, 대야성 전투를 이기고, 신라를 제압하는등 선전했다. | |||
중국과 외교관계도 끊었다. | |||
참고로 이때 신라에게서 약 40여개 성을 먹었다.<ref>출처:삼국사기</ref> | |||
===== 몰락 ===== | |||
그러나 말기로 갈수록 향락에 빠지고, 사치와 충신 숙청<ref>성충과 흥수를 숙청했다. 특히 성충은 향락을 말렸다는 이유(...)</ref>과 간신들로 망해갔다. | |||
물론 이 때도 충신은 있었다. 성충은 향락을 말렸고, 흥수는 탄현과 기벌포에서 막으라고 했다.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 |||
결국 귀족군을 모으지도, 탄현과 기벌포에서 막지도 못한다.... | |||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장군이 잘했으나 역부족이었다. | |||
결국 [[660년]] [[나당연합군]]에게 [[멸망]] 당한다. | |||
[[분류:한국사]] | |||
[[분류:옛 나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