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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현대문학 위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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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3 장연(長淵)에서 사망 | | 1943 장연(長淵)에서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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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활동 == | | == 작품활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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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명은 <span>K</span>가마<span>(</span>珂瑪<span>). 1907</span>년 <span>4</span>월 <span>20</span>일 황해도 송화에서 출생했다<span>. 6</span>살 때 개가한 어머니를 따라 장연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span>. </span>이 곳 장연의 풍경은 나중에 그녀의 작품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span>. 1921</span>년 평양숭의여학교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동맹휴학관계로 퇴학처분을 받았다<span>. </span>그녀의 어린 시절은 한 마디로 궁핍과 불행으로 요약될 수 있으며<span>, </span>학생시절부터 진보적 성향을 가져 항일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span>. </span> | | 필명은 K가마(珂瑪). 1907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에서 출생했다. 6살 때 개가한 어머니를 따라 장연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곳 장연의 풍경은 나중에 그녀의 작품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1921년 평양숭의여학교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동맹휴학관계로 퇴학처분을 받았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한 마디로 궁핍과 불행으로 요약될 수 있으며, 학생시절부터 진보적 성향을 가져 항일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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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3년 장연에서 문학강연을 하던 양주동을 찾아가 자신의 문학적 소질을 길러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듬해에는 양주동을 따라 상경하여 《금성》사에서 기거하며 문학을 공부하였다. 이 무렵에는 주로 시를 공부하였는데 나중에 양주동의 권유로 소설로 방향을 바꾸었다. 1924년 양주동과 결별하고, 이후 장연의 언니집에서 문학공부를 계속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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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1923</span>년 장연에서 문학강연을 하던 양주동을 찾아가 자신의 문학적 소질을 길러달라고 부탁하였다<span>. </span>이듬해에는 양주동을 따라 상경하여 《금성》사에서 기거하며 문학을 공부하였다<span>. </span>이 무렵에는 주로 시를 공부하였는데 나중에 양주동의 권유로 소설로 방향을 바꾸었다<span>. 1924</span>년 양주동과 결별하고<span>, </span>이후 장연의 언니집에서 문학공부를 계속했다<span>. </span>
| | 1931년 《조선일보》에 단편 「파금(破琴)」을, 그리고 《혜성》에 장편 「어머니와 딸」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1931년 장하일(張河一)과 결혼하여 간도 용정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북향》 동인으로 활동하며 작품을 계속 발표했다. 1934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wp-d/586ce4a0971df9bc5e0bbbdc/View|인간문제]]」는 그녀의 대표작이자 식민지 시대 우리문학이 도달한 높은 봉우리 중의 하나이다. 1935년 「모자」, 「원고료 이백원」, 1936년 「[[wp-d/586cbe93971df9bc5e0bbac6/View|지하촌]]」, 「이땅의 봄」, 「파경」, 1937년 「산남(山男)」, 「검둥이」 등을 발표했다. 1942년 간도로부터 귀국하였으나 이듬해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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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span><br />
| | 그녀의 작품활동은 1931년에서 1939년에 이르는 짧은 기간에 집중되어 이루어졌다. 불행했던 소녀시절과 학창시절의 체험, 그리고 문학수업기에 받은 양주동의 복고적‧중도적 국민문학론의 영향으로부터의 이념적 독립을 위한 진로모색에서 그녀는 쉽게 식민지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접할 수가 있었다. 「인간문제」는 정덕호로 상징된 봉건적 지주계급의 횡포와 간사한 면모를 제시하고 이에 맞서는 빈농들의 의식성장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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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1931</span>년 《조선일보》에 단편 「파금<span>(</span>破琴<span>)</span>」을<span>, </span>그리고 《혜성》에 장편 「어머니와 딸」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span>. 1931</span>년 장하일<span>(</span>張河一<span>)</span>과 결혼하여 간도 용정으로 이주했다<span>. </span>그곳에서 《북향》 동인으로 활동하며 작품을 계속 발표했다<span>. 1934</span>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wp-d/586ce4a0971df9bc5e0bbbdc/View|인간문제]]」는 그녀의 대표작이자 식민지 시대 우리문학이 도달한 높은 봉우리 중의 하나이다<span>. 1935</span>년 「모자」<span>, </span>「원고료 이백원」<span>, 1936</span>년 「[[wp-d/586cbe93971df9bc5e0bbac6/View|지하촌]]」<span>, </span>「이땅의 봄」<span>, </span>「파경」<span>, 1937</span>년 「산남<span>(</span>山男<span>)</span>」<span>, </span>「검둥이」 등을 발표했다<span>. 1942</span>년 간도로부터 귀국하였으나 이듬해 <span>37</span>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span>. </span>
| | 농민에서 노동자로, 노동자에서 각성된 노동자로, 각성된 노동자에서 조직적 활동가로 변모해 가는 식민지 시대의 투쟁적 인간상을 그린 이 작품은 공장내부에 대한 구체적이고 생생한 묘사로 더욱 돋보인다. 그녀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질 수 있었을 때는 현실을 극복하여 새로운 총체적 삶을 추구하려 했으며, 정세의 악화로 전망을 상실한 경우에도 혼돈이나 불안 상태에 빠지지 않고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력을 발휘한 비판적 리얼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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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작품활동은 <span>1931</span>년에서 <span>1939</span>년에 이르는 짧은 기간에 집중되어 이루어졌다<span>. </span>불행했던 소녀시절과 학창시절의 체험<span>, </span>그리고 문학수업기에 받은 양주동의 복고적‧중도적 국민문학론의 영향으로부터의 이념적 독립을 위한 진로모색에서 그녀는 쉽게 식민지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접할 수가 있었다<span>. </span>「인간문제」는 정덕호로 상징된 봉건적 지주계급의 횡포와 간사한 면모를 제시하고 이에 맞서는 빈농들의 의식성장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span>. </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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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경애의 작품은 1931-1939년에 이르는 불과 몇년 안되는 기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 졌는데, 이는 그녀의 모든 작품이 투철한 사회의식으로 일관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해명이 된다. 불행했던 소녀시절과 학창시절의 체험,그리고 문학수업기에 받은 양주동의 복고적 중도적 국민문학론의 영향으로부터의 이념적 독립을 위한 진로 보색에서 강경애는 쉽게 식민지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에 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간도체험과 각종 사회운동에 대한 직간접적인 체험은 남편의 그것과 상승작용을 해서 그녀는 뚜렸한 역사인식에 접근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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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에서 노동자로<span>, </span>노동자에서 각성된 노동자로<span>, </span>각성된 노동자에서 조직적 활동가로 변모해 가는 식민지 시대의 투쟁적 인간상을 그린 이 작품은 공장내부에 대한 구체적이고 생생한 묘사로 더욱 돋보인다<span>. </span>그녀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질 수 있었을 때는 현실을 극복하여 새로운 총체적 삶을 추구하려 했으며<span>, </span>정세의 악화로 전망을 상실한 경우에도 혼돈이나 불안 상태에 빠지지 않고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력을 발휘한 비판적 리얼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span>.</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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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애의 작품은 <span>1931-1939</span>년에 이르는 불과 몇년 안되는 기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 졌는데<span>, </span>이는 그녀의 모든 작품이 투철한 사회의식으로 일관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해명이 된다<span>. </span>불행했던 소녀시절과 학창시절의 체험<span>,</span>그리고 문학수업기에 받은 양주동의 복고적 중도적 국민문학론의 영향으로부터의 이념적 독립을 위한 진로 보색에서 강경애는 쉽게 식민지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에 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span>. </span>더구나 간도체험과 각종 사회운동에 대한 직간접적인 체험은 남편의 그것과 상승작용을 해서 그녀는 뚜렸한 역사인식에 접근하게 된다<span>.</span>
| | 작품 <어머니와 딸>에서부터 하층 여성의 수난을 들추어 내고 사회적 비리에 항거하던 강경애는 대표작 <인간문제>에서 식민지적 모순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빈농계급의 역사적 변모과정을 제시한다. 여기서 정덕호로 상정된 봉건적 지주계급의 횡포와 간사한 모습을 제시하고 이에 맞서는 빈농들의 성장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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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span><</span>어머니와 딸<span>></span>에서부터 하층 여성의 수난을 들추어 내고 사회적 비리에 항거하던 강경애는 대표작 <span><</span>인간문제<span>></span>에서 식민지적 모순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빈농계급의 역사적 변모과정을 제시한다<span>. </span>여기서 정덕호로 상정된 봉건적 지주계급의 횡포와 간사한 모습을 제시하고 이에 맞서는 빈농들의 성장과정을 그려내고 있다<span>.</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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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민에서 노동자로 ,노동자에서 각성된 노동자로,각성된 노동자에서 조직적 활동가로 변모해가는 식민지 시대의 투쟁적 인간상을 그린 <인간문제>는 당시 카프진영의 작품들에서도 그리 흔하지 않을 정도로 공장내부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해냈으며,또한 지하 조직활동이 이 작품에서처럼 적절하게 노출된 경우도 드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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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민에서 노동자로 <span>,</span>노동자에서 각성된 노동자로<span>,</span>각성된 노동자에서 조직적 활동가로 변모해가는 식민지 시대의 투쟁적 인간상을 그린 <span><</span>인간문제<span>></span>는 당시 카프진영의 작품들에서도 그리 흔하지 않을 정도로 공장내부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해냈으며<span>,</span>또한 지하 조직활동이 이 작품에서처럼 적절하게 노출된 경우도 드물다<span>.</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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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외부현실 자체를 묘사할 때 강경애는 모든 희망이 차단된 ‘지하촌’이라는 가장 궁핍한 곳의 무력한 어린이와 불구자의 생활상을 묘사대상으로 선택했다<span>. <</span>어둠<span>></span>에서 가혹한 현실에 대한 저항은 광란이나 죽음으로 끝날 수 밖에 없고 상황은 여전히 어둡다는 절망상태를 묘사했는데 <span>,</span>이는 비록 죽는다 할지라도 현실에 저항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강경애가 인식하였음을 보여준다<span>.</span> | | 한편 외부현실 자체를 묘사할 때 강경애는 모든 희망이 차단된 ‘지하촌’이라는 가장 궁핍한 곳의 무력한 어린이와 불구자의 생활상을 묘사대상으로 선택했다. <어둠>에서 가혹한 현실에 대한 저항은 광란이나 죽음으로 끝날 수 밖에 없고 상황은 여전히 어둡다는 절망상태를 묘사했는데 ,이는 비록 죽는다 할지라도 현실에 저항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강경애가 인식하였음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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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강경애의 현실대응 변모양상의 변모과정은 <span>30</span>년대 사회와 밀접하게 관련되어서<span>,</span>당대의 다양한 문학적 경향 중의 한 유형을 보인다<span>. </span>그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질 수 있었을 때는 현실을 극복하여 새로운 전체적 삶을 추구하려 했으며<span>,</span>정세의 악화로 전망을 상실한 경우에도 혼돈이나 불안상태에 빠지지 않고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력을 발휘한 비판적 리얼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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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러한 강경애의 현실대응 변모양상의 변모과정은 30년대 사회와 밀접하게 관련되어서,당대의 다양한 문학적 경향 중의 한 유형을 보인다. 그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질 수 있었을 때는 현실을 극복하여 새로운 전체적 삶을 추구하려 했으며,정세의 악화로 전망을 상실한 경우에도 혼돈이나 불안상태에 빠지지 않고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력을 발휘한 비판적 리얼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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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 == | | == 작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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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훈 강경애 「인간문제」연구 한양대 석사 94 | | 김도훈 강경애 「인간문제」연구 한양대 석사 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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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이보기<br /> | | == 같이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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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k/인간문제(해설)|인간문제(해설)]]<br /> | | * [[dok/인간문제(해설)|인간문제(해설)]]<b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