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큰숲백과, 나무를 보지 말고 큰 숲을 보라.

틀:정기간행물 정보

동아일보 사옥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인촌 김성수 동상.
동아미디어그룹
창립 2011년
주요 주주 인촌기념회 24.14%
김재호 22.18%
그 외 주주 53.68%
[1]
자회사 ㈜동아일보
㈜동아닷컴
채널A(동아일보 자회사)
여성동아
신동아
스포츠동아
미디어렙 A

동아일보》(東亞日報, Dong-A Ilbo)는 신문 발행 업체인 동아일보사가 서울에서 발행하는 대한민국의 일간 신문이다. 대한민국의 3대 일간지이자 보수 성향의 일간지인 조중동의 한 구성원이기도 하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1920년 경신년 4월 1일 송진우, 김성수, 유근 등의 주도로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 '민주주의 지지', '문화주의 제창'이라는 사시 아래 창간되었다. 초대 사장은 박영효였고, 초대 주필은 김성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브나로드 운동, 연정회, 신간회 운동 등을 지원하였다. 동아일보가 강제 폐간이 된 그 해인 1940년 초 일제가 동아일보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우려했음을 보여주는 비밀 문건들이 공개되기도 했다.[2]

해방 직후부터 우익 정당 한국민주당민주당 성향의 논조를 보여왔으며, 1960년대에는 반독재, 민주언론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1970년대 중반 무렵에는 두 차례의 기자 대량 해고사태와 광고탄압으로 광고 중 98%가 떨어져 나가는 사건을 겪기도 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의 시기에는 19~23일 초기 5일 동안 무사설(無社說)로 저항하였고, 1987년 박종철 고문 사건 연속 특종보도로 6월 민주항쟁을 촉발시켰으며 87, 92년 선거 당시 김대중 성향을 보임에 따라서 김영삼 정부 때까지 대표적인 야당지로 구분됐다.

하지만 김대중 정권시기 대북정책과의 갈등을 시작으로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와 김병관 명예회장의 부인 안경희(安慶姬)씨 자살 사건으로 논조가 크게 달라진다. 이후 조선일보, 중앙일보와 함께 보수계열을 대변하는 언론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의 민주당을 지지해 온 사주라는 점 때문에 조선일보와는 전혀 다른 보수의 길을 걷고 있다.[3]

노무현 정권이 들어간 이후에는 상위 3개 회사의 점유율 60%를 넘길 경우 독과점 업체로 지정한다는 신문법 문제와 행정수도 이전 문제로 갈등을 심하게 빚었다. 이후 이명박 정권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이슈와 촛불시위 정국 직후에는조선일보보다 민주당에 더 부정적이었다.

판매[편집 | 원본 편집]

2013년 한국ABC협회 인증조사에 따르면, 동아일보의 유료부수는 707,346부이며 호남지역에서 한겨레와 구독율 1위를 다투고 있으나 서울 등에서는 3위에 그치고 있다. 과학대중잡지인 '과학동아'를 비롯한 '신동아', '여성동아', '어린이동아', '스포츠동아'등 월간 및 주간잡지와 단행본을 발행하고 있다. 또한 뉴미디어 사업의 일환으로 동아닷컴 과 온라인 교육회사인 디유넷을 운영하고 있다. 1993년 4월 1일 석간에서 조간으로 전환했다.

제휴 관계[편집 | 원본 편집]

일본 아사히신문(朝日新聞), 중국 인민일보(人民日報), 러시아 이즈베스티야(Izvestia), 호주 시드니모닝헤럴드(Sydney Morning Herald)지와 제휴하고 있으며 세계 6개 지역에 특파원을 두고 있다.

관련사[편집 | 원본 편집]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조중동의 지분 구조를 알 수 있을까요?
  2. "1940년에도 동아-조선, 거칠게 민족의식 고취" 동아일보 2005-06-29
  3. 박주호 기자 (2001년 10월 25일 12:49). “[한겨레 기자 'DJ는 왜…' 책 파문] 언론세무조사 정당성 또 도마에”. 국민일보. 2001년 10월 25일 12:49에 확인함. 
이 문서의 일부 내용의 출처는 위키백과의 동아일보 문서의 15753325판입니다.
이 문서의 출처는 리브레 위키의 동아일보 문서의 509768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