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 | |||||||||||||||||||||||||||
---|---|---|---|---|---|---|---|---|---|---|---|---|---|---|---|---|---|---|---|---|---|---|---|---|---|---|---|
1대 | 2대 | 3대 | 4대 | 5대 | 6대 | 7대 | 8대 | 9대 | 10대 | ||||||||||||||||||
이승만 | 윤보선 | 박정희 | 최규하 | ||||||||||||||||||||||||
11대 | 12대 | 13대 | 14대 | 15대 | 16대 | 17대 | 18대 | 19대 | 20대 | ||||||||||||||||||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 김대중 | 노무현 | 이명박 | 박근혜 | 문재인 | 윤석열 |
성명 | 대 | 비고 |
---|---|---|
이승만 | 1대 | 제헌국회 선출 |
이승만 | 2대 | 압박 속의 만장일치 개헌으로 집권. |
이승만 | 3대 | 사사오입 개헌으로 집권. 4.19 혁명으로 하야. |
윤보선 | 4대 | 장면 내각. |
박정희 | 5대 |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 장악. 4개년 계획. |
박정희 | 6대 | 박정희의 마지막 직선제 선출 |
박정희 | 7대 | 유신헌법 개헌으로 장기집권 확보,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선제 개헌 |
박정희 | 8대 | 통일주체국민회의 선출(사실상 독재) |
박정희 | 9대 | 통일주체국민회의 선출(사실상 독재). 김재규에게 사살 당함. |
최규하 | 10대 | 전두환의 압박으로 실권이 없는 대통령 1년이 안되어 하야 선언. |
전두환 | 11대 | 신군부 출신. 쿠데타로 정권 장악. |
전두환 | 12대 | 독재.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민주 항쟁으로 사임. |
노태우 | 13대 | 대통령 직선제 원상복구. 신군부 출신. |
김영삼 | 14대 | 마지막 개헌 이후 최초의 민간인 대통령, 문민정부. IMF 경제 위기. |
김대중 | 15대 | 국민의 정부. 햇볕정책. |
노무현 | 16대 | 참여정부. 박연차 게이트로 자살. |
이명박 | 17대 | 실용정부, 사대강 사업. |
박근혜 | 18대 | 민생정부, 임기 직전 탄핵 |
문재인 | 19대 | 더불어민주당 정부 |
윤석열 | 20대 | 미정 |
김대중 | |
---|---|
200 공식 초상화 |
|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 |
|
임기 | 1998년 2월 25일 ~ 2003년 2월 24일 |
국무총리 | 김종필 (1998 ~ 2000) 박태준 (2000) 이한동 (2000 ~ 2002) 김석수 (2002 ~ 2003) |
전임: 김영삼(제14대) 후임: 노무현(제16대)
| |
신상정보 | |
국적 | 대한민국 |
출생일 | 1924년 1월 6일 |
출생지 | 조선 전라남도 무안군 하의면 후광리 하의도[1] |
사망일 | 2009년 8월 18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
정당 | 무소속 |
학력 | 목포상업고등학교 졸업 |
종교 | 천주교 |
영부인 | 이희호 |
자녀 | 아들 김홍일, 김홍업, 김홍걸 |
부모 | 父 김운식, 母 장수금 |
웹사이트 | http://kimdaejungfoundation.org/ |
소개[편집 | 원본 편집]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가, 인권 운동가, 정치인,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자. 제15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재임시 김대중 정권의 명칭은 국민의 정부였다. 현재까지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이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된 최초의 대통령이다. 햇볕 정책과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남북 정상 회담과 6.15남북 공동 선언으로 유명하다. 이 시기에 금모으기 운동과 IMF 극복, 2002 한일 월드컵도 있었지만, 서해 교전(제2연평 해전)과 카드 대란으로 구설수에 올라야만 했다.
임기 중 전임자 김영삼 대통령처럼 또다시 아들 비리에 시달리며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른다. 퇴임 이후, 참여정부 시절에 대북 송금 사건으로 또 한 차례 구설수에 올라야만 했다. 첨언하자면, 이 때문에 민주당이 분열하여 열린우리당이 창당되고 흑화한 민주당은 새누리당, 자민련과 연합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와 오늘날까지 동교동계냐 친노계냐로 싸우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정작 대북송금 사건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무현대통령이 내린 결단에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사족으로 박정희와 마지막 선거전에서 유신체제를 예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선거에서 지면 총통정이 시작될 겁니다!" 라고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반해 박정희 대통령은 "이번에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표를 달라고 하겠습니다!" 라고 했다고 했는데 결과론적으로 두 사람의 말은 모두 맞았고 모두 지켜진 셈.
특이기록[편집 | 원본 편집]
- 한국 역대 최단임 국회의원 재임 기록을 갖고 있다. 1961년 5월 13일 재보궐선거 강원도 인제군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는데 당선증을 받고 다음날에 5.16 쿠데타가 일어나 정치활동 금지조치로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이때 같이 선출된 동료의원 4명과 함께 임기 약 하루(...).
- 1964년 4월 21일, 동료 의원 김준연이 내민 구속동의안 처리를 막기 위해 5시간 19분동안 연설하는 필리버스터[2]를 감행하여 김준연 구속동의안 처리를 저지한다. 이는 1969년까지 한국 역사상 필리버스터 최장연설 기록이며, 1969년 8월 29일 박한상 의원이 3선개헌을 막기 위해 10시간 5분동안 발언하면서 깨지게 된다. 다만, 결과론적으로 박한상 의원의 필리버스터는 3선개헌 저지에 실패했기에 사람들은 김대중이 행한 성공적인 필리버스터만 기억한다.(...)[3]